부모들은 자녀들끼리 서로 잘 챙겨주고, 살펴주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자녀된 성도들끼리 어떻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육신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사이좋게 사랑하며 지내는 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부분에 대해서 간절히 하나님께 구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1~23)
예수님은 세 번이나 반복해서 '그들도 하나가 되어'를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렇게도 간절히 우리의 하나됨을 원하실까요?
첫째, 우리가 하나될 때에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될 때에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세상이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도를 열심히한들, 싸우거나 분열하면서 하고 있다면
오히려 복음의 길을 막아놓고 헛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구호나 행사나 말보다 우리가 하나 되어야 전도가 잘 됩니다.
그래서 선교나 봉사나 구제 현장에서 '사랑하다가' 와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는 말처럼,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맨날 웃고 다녀?'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
이렇게 물어올 때가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전도의 기회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첫째, 예수님이 주시는 '영광'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이미 영광을 주셨습니다.
영생, 사명, 권세, 능력, 지혜, 그리고 성령이라는 놀라운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영광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오늘도 예수님의 영광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영광을 간절히 사모합니다'라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가 온전해지는 비결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과 학문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기에 망한다'고 하시며 '여호와를 힘써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게으름, 교만, 자아, 욕심, 습관, 전통, 구습, 세상의 가치관들...
가려내서 도려내고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없애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주님, 우리도 당신을 더욱 알아가며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