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 중에서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넘겨달라고 하면서 그들을 죽여서 악을 제거하겠다고 강력하게 대처한다.(삿20장)
물론 악에 대해서 강력한 대처는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악을 뿌리 채 뽑을 수는 없지만 악행한 자들에 대한 징계와 처벌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인의 행위와 말만 듣고 처벌을 결정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정의와 공평과 용서와 타협도 없다.
레위인이 죽은 첩의 시체를 토막내서 12지파에 보낸 행위와 그의 증언만을 듣고 감정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레위인은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비인격적이고 잔혹한 행동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감정적으로 자극한 것이다.
레위인의 행동은 거짓이 많이 포함된 비열함과 자기 합리화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뜻을 묻지 않니 인간의 잔혹함과 비열함이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모든 문제와 상황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불량배들을 다 죽이겠다고 이미 결정을 해놓았다.
자초지종을 살피고, 객관적인 증거를 확인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상황과 문제를 가지고 뜻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인의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나 레위인은 이미 결정해 놓은 후에 요식행위로만 하나님께 묻고 있는 상황을 본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18절)
이미 싸우기로 죽이기로 결정했다고 하면서 그저 하나님께는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지를 여쭙고 있다.
정말 그 문제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물었는지 의문이 든다.
만약 하나님께서 ‘싸우지 말라’고 하셨다면 이스라엘 자손이 싸우러 가지 않았을지 궁금하다.
하나님의 뜻은 형제의 싸움이 아니라 연합하여 동거함이다.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15~17절)
베냐민 자손의 군사는 이만 육천 명이고 기브아의 왼손잡이 용사 칠백 명을 더해본들 사십만 명의 이스라엘 군대를 이길 수 없는 열세인 것을 본다.
어느 누구도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무지함과 무자비함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다.
이 질문이 언제나 나의 질문이 되기를 소원한다.
‘예수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