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들과 함께

믿음!?

by 정창복 posted Ma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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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4장 후반부에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신하의 신분에 대해서 왕의 신하라는 구체적인 자리를 명시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최소 하룻길 되는 거리를

오게 되었습니다.


  고위 관직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당시 최고의 의료처방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것은 그런 방법으로는 아들의 병이 낫지 않았다는 것이고 최후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고위 관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신하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죽기 전에 오시기를 바라는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말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신하가 “네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씀을 믿고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하의 마음이 움직여진 갑작스러운 믿음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까지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다르기 때문이지요.


  신하의 마음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았음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내려가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사실이라면, 왕의 신하는 분명 그 내면에 예수님의 말씀은 믿을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가기 전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신하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정확했습니다. 신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신하에게 정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하는 자신의 마음에 있던 사실을 예수님이 정확하게 아신 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정말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 확신이 있는 마음에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씀이 주어지자 그것을 그대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 믿음과 함께 신하는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었을 때에는 예수님이 꼭 병들어 있는 아들에게 내려와 달라는 간청을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가라”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고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하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집의 종들을 통해 아들이 살았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들의 열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간이 예수님꼐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한 신간임을 깨닫게 되면서, 이제는 그 신하의 슬하에 있는 온 집안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의 특징은 믿음의 고백과 함께 반드시 행동이 수반된다는 말입니다. 행동이 뒤따라 나오는 믿음은 “신뢰”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뢰”의 자세는 믿음의 역사를 보게 합니다. 


  입술의 고백과 행동이 함께 있는 믿음은 믿는 그대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녀임을 믿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자녀로 믿지만 나 혼자 세상을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은 자녀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행동이 아닌것이지요. 


  예수님을 믿읍시다. 믿고 믿는대로 행동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믿음 있는 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