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들과 함께

머뭇머뭇함

by 정창복 posted Apr 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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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활동하던 때는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유일한 신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가나안땅의 우상이었던 바알과 아세라를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섬겼었고 아합왕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말 안 듣는 자녀에게는 질책의 말을 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북 이스라엘에는 비와 이슬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처럼 북 이스라엘에는 정말로 3년 6개월이나 되는 시간동안 비가 오지 않게 되었고, 그 땅은 극심한 가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엘리야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과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 450인을 불러, 하나님과 바알 중에 진짜 여호와가 누구인지 가리기로 합니다. 그 때 엘리야가 북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둘 사이(하나님과 바알)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북 이스라엘 백성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였습니다. 여기 서지도 못하고 저기 서지도 못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땅이 비옥하게 되어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바알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크신 기적과 능력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을 여호와로 믿을지, 아니면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바알을 믿을지 머뭇머뭇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알이나 아세라는 거짓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우상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강원도에 있는 울산바위 앞에가서 천년을 빌어도 바위는 그냥 바위입니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하나도 들어줄 수 없습니다. 고대시대에 살았던 북 이스라엘은 풍요를 이루어주는 것이 바알이라는 착각 속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로 서지 못하는 머뭇머뭇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서지 못하게 되는 머뭇머뭇함은 무엇일까요? 주저없이 세상적인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업이 중요한 학생들에게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핵심보충수업이 학생들의 인생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100% 세상적인 가치관입니다.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돈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에 맞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또한 100% 세상적인 가치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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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스쿨 최정훈


  세상적인 가치관은 이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앞에 머뭇머뭇하게 만드는 바알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바알과 같은 세상적인 가치관은 분명하게 우리로 머뭇머뭇거리게 만듭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과 유익이 보인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방법은, 나의 방법은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 살아간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한 사람이 없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걸어서 실패한 사람이 없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 열매 맺지 못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머뭇머뭇하지 말고 하나님 편의 자리로 갑시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