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들과 함께

사명자로 일어서다

by 정창복 posted Apr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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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오해했던 바울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라고 하였을 정도로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해를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날도 예전처럼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대제사장이 허락한 권한을 얻어 위협과 살기를 품고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인을 잡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를 둘러 비추는 빛을 만나게 됩니다.

  그 빛 가운데 바울은 땅바닥에 엎드러지고 이내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울아 바울에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울의 인식을 깨는 말씀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후 땅에서 일어났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바울은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기도만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하고 기도만 하고 있는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누군가 바울에게 안수하여 바울이 다시 앞을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환상에서 본 것과 같이 예수님은 아나니야라고 하는 주의 제자를 통해 바울에게 안수하게 하셨고, 바울은 눈에 있던 비늘이 벗겨져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예수님은 바울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택한 나의 그릇”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바울을 사용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로 하여금 예수님이 참 하나님 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시간이 있었음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혹시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바울이 “주님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받게 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주님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위해서 택함을 받은 “주님의 그릇”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택함 받은 주님의 그릇이라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모양의 그릇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김새와 성품과 성격이 다르듯이 사명은 각자각자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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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훗날 어떤 모양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택함을 받은 그릇으로서의 삶은 오늘부터 살아야 합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친구들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교제하는 모임에서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로도 전하고 행동으로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면,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전할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해보려고 할 때에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인도하여 내시는 예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사명자로 일어섭시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