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선택할 때,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급기야는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나오면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으로 믿겠습니다” 혹은 “검정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오면 나의 짝으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한다면 과연 올바른 결정을 할 것이며,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사에 제비뽑기만 하면서 어떤 일들을 결정해 나간다면 균형잡히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드디어 나홀의 성에 이르렀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습니다. 늙은 종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오늘 순조롭게 만나게 해주십시오. 여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물동이를 기울여 마시게 하라고 할 깨 마시게 하고,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 소녀는 주께서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고 알겠나이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한 소녀가 물동이를 메고 나왔습니다. 그녀는 보기에 매우 예뻤으며 결혼 적령기의 리브가라고 이름하는 처녀였습니다. 늙은 종이 달려가서 “물을 조금 마실 수 있느냐”고 요청합니다. 리브가는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물을 길어서 먹입니다. 늙은 종은 그녀를 묵묵히 주목하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과연 평탄하게 인도하신 것인가를 확인하려고 리브가에게 묻습니다. “네가 누구의 딸이냐,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리브가는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며, 집에는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늙은 종은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에, 늙은 종이 기도하고 결정했던 것처럼 할 수 있습니까? 자신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는 소녀를 만나면 이삭의 아내로 선택하겠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한 너무 무리한 방법이 아닌가요? 늙은 종이 리브가를 만난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현실의 삶에 너무 그대로 적용할 때, 단순한 우연을 너무나 필연적인 사건이나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해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지 않을까요? 꽃무늬 블라우스는 입고 나왔는데, 아무리 만나도 대화는 안 되고 전혀 사랑이 안 되는데 결혼을 해야 합니까? 검쟁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는 매고 나와서 이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치명적인 질병이 있거나 정신적인 질병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과연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요? 그것을 신앙이나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의 질문입니다.
사실 종의 기도와 시험은 우연히 일어난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이 아니라, 한 소녀의 인격과 성품을 확인해보는 시험으로 보아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나그네를 대접하고 귀하게 영접하는 것만큼 더 좋은 기준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 마리의 낙타에게까지 자발적으로 물을 먹이는 것은 일반적인 예절보다 더 대단하고 훌륭한 예절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열 마리의 낙타에게 물을 먹이려면 1,000리터의 물은 족히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찌 보면 대단히 엄격한 시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비뽑기로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나오는 여자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여자라고 믿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정의를 주셨습니다. 지정의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인생의 길을 결정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활용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갈 때,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배워가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안 배우고, 읽지도 않고, 묵상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배우고 알아가겠다는 것은 비 신앙적인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차원 놓은 과학이자, 가장 위엄 있는 철학은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과 본질과 인격과 사역과 행하심과 존재하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슬픔을 잊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바다에 빠뜨려 보라. 그의 무한하심 속에 빠져 보라. 그러면 당신은 휴식의 침상에서 원기를 되찾고 다시 힘이 넘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예, 맞습니다. 용기를 얻고 싶으십니까?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 싶으십니까? 일터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미래를 얻고 싶습니까? 사람을 얻고, 사람을 알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알아 가십시오. 하나님의 깊은 바다에 빠져 보십시오. 이 땅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남자 친구를 알아가려면 남자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보고, 그 친구의 생각과 스타일과 말투와 언어와 습관과 패턴과 그의 가족을 알아야 합니다. 한두 번 만난 다음에 “나는 저 사람을 다 알았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못합니다. 결혼하고 몇 년을 살아도 저 사람 속은 모르겠다고 하건만, 어찌 하나님을 몇 년 만에 알 수 있겠습니까? 나도 지금 결혼 17년차 되니까 아내를 알겠고, 아내도 나를 이제 조금 알겠다고 합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방법으로도 말씀하신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경우는 그들이 하나님께 물을 때에 하나님은 직접 대답해 주셨습니다. 많은 왕들이 제사장을 통해서 물어보고 답변을 들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제비뽑기가 한 번 나오긴 합니다.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을 충원할 때에, 제비뽑기를 통해서 맛디아를 선출했습니다. 그렇다면 제비뽑기가 성경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선택하는데 있어서 한 방법이었을 뿐이지 그것이 꼭 성경적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비뽑기를 하는 제자들의 방법을 허용하셨고, 한 사람을 뽑도록 하는데 간섭하셨다고 보면 됩니다. 제비뽑기를 하든,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간에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결정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해서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다 결정해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선적인 인생을 결정해 놓으셨으며, 우리는 그 길을 정확하게 찾아나가야 하는 그런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매우 폭 넓게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결정을 존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롭게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해야만 하나님의 뜻이며, 다른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직선적 혹은 2차원적인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가장 좋게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가 생각했던 것만큼 잘 되었으면 감사하고, 안 되었어도 평안하게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가장 선하고, 좋은 길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나는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27절)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과 성실로 늙은 종으로 하여금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고,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Yes”하시면서 우리가 기도한대로 해주십니다. 또 하나는 “No”하시면서 안 해주십니다. 또 하나는 “기다리라”하십니다. 하나님이 “Yes"라고 하셨다면 그것이 내게 가장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No"라고 하셨다면 그것이 내게 가장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기다리라“는 응답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기다리는 것이 가장 내게 좋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