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 우리 교회는 포천 영북면에 있는 어려운 10가정을 포천의 한 시장으로 오시라고 해서 한 가정 당 10만 원씩 추석 장보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혼자 살고 계신 최**(70세)어르신의 집을 대청소 해드렸습니다. 답사를 갔을 때 어르신 집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온 집안에 꽉 찼었습니다. 음식물 썩은 것들과 전혀 빨래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이불과 옷가지들로 집안이 어지럽혀져 있었습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서 70세 되신 분들은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도 잘 지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최**어르신은 안타깝게도 16년 전에 가족과 헤어지고 포천으로 이주해왔습니다. 그래도 포천에 형이 살고 있어서 고물상과 개장수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도 실패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되었고 심지어 형과 칼부림까지 하는 폭력으로 감옥까지 다녀온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살아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테러, 살인, 도둑질, 미움, 시기, 무지 등은 모두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서 나온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죄악됨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8~31) 그래서 세상은 부정과 부패를 없애기 위해서 국가청렴위원회, 부정부패방지법, 김영란법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합니다. 물론 사회를 정의롭게 하는 시스템은 필요하며 개인적으로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무지와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세운 후에 성막 안으로 기구들을 들여 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기름을 발라서 성막과 기구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부음의 의식을 가졌습니다. 최종적으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를 믿을 때에 그 믿는 자는 거룩한 자로 구별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자가 되었고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룩하게 된 우리가 왜 거룩하게 살지 못할 때가 있나요? 왜 죄와 악에 무너져 버릴 때가 있는 것인가요? 그 이유는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인식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고, 인식하는 것을 무시해버릴 때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진리의 영으로 내 안에 오셨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성령을 모시고 살면 죄가 결코 기쁨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근심하시므로 죄를 짓는 것이 고통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말, 생각, 행동하는 것이 결코 즐겁지 못하고 부담과 불편함과 찔림을 줍니다.
우리는 죄의 달콤함을 알기 때문에 죄의 즐거움을 다 버리고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 버리면 무슨 재미로 사나” “그 정도는 큰 죄도 아닌데” “그래도 내 삶의 작은 낙인데, 그 정도는 이해해주시겠지, 지옥 가는 것도 아닌데”하면서 무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우리에게 죄는 고통입니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슬퍼하시며 결국은 토해내게 하십니다.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미워하고는 못 삽니다.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성령과의 친밀함이 없는 사람은 죄가 즐거움입니다. 성령과의 만남이 별로 없으면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능력 있고, 자유롭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강을 얻지 못하고,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복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2~15)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기름이 발라진 자들이지만 한 번 바른 것으로 평생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밥 한 끼로 평생 사는 사람은 없으며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날그날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성령의 기름으로 발라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엡3:16)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고 말씀합니다.
연약하고 깨어졌어도 성령의 기름이 발라지면 치료되고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발라야 합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성령을 발라야 합니다. 성령으로 발라지면 성숙하고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 모임에서도 넉넉하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됩니다. 불법의 관행에서 정직할 수 있습니다. 실패와 낙심되는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일어나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억지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과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