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잘 알고 지내던 친구가 3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었다고 생각해보죠. 그런데 며칠 후에 갑자기 잠적해버렸다면 어떨까요?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에 빈털터리로 여러분 앞에 나타났다면, 어떤 말을 듣고 싶으시겠습니까?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해야 그 관계에 진전이 생길까요?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반드시 꼭 갚겠다’ 라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돈을 갚아 나가야 화해가 되겠지요. 사실 돈으로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 정서, 감정, 믿음까지도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계든지 그 관계를 깨트린 쪽에서 먼저 잘못을 반성하고 조치를 취해야 비로소 문제의 해결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볼까요? 하나님과 인간은 완벽한 화평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라는 선한 뜻으로 만물을 맡기셨습니다. 인간은 청지기로서 달란트를 받아 관리하는 하나님과 매우 우호적이며 협력적인 관계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관계입니까? 그런데, 이 완벽한 화평의 관계를 인간이 먼저 깨트리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반기를 들어 죄를 범했습니다.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으로 모자라 대적하고 더 나아가서 욕하고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고, 우상을 만들어 엉뚱한 신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대적하였는지 나옵니다. 그러한 인간들에게 남은 형벌은 사형이었지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완벽하게 깨지고, 단절되었습니다.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의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화해를 요청해야 할까요? 먼저 관계를 저버리고 실망만 안겨준 쪽인 인간이 해야겠지요. 어떻게든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해야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은 것이죠. 인간은 하나님께 화해를 요청할 수 있는 능력조차도 완벽하게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먼저 화해를 요청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언제 화해를 요청하셨을까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진전도 이룰 수 없는 우리 인간에게 먼저 화해를 요청하신 쪽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화해를 요청하셨기에 화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진 빚 1,2억을 탕감해주어도 너무나 감사한 것인데, 온 우주 만물과 영혼들을 빚진 인간에게 먼저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와 화평하시고 싶으신 하나님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경험한 자는 적대적인 관계가 해결되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먼저,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하는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틀어졌던 관계가 다시 완전히 회복되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울까요?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 서로를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것, 그보다 수천배는 더 기쁜 일일 것입니다. 그 관계에서 다른 것을 자랑하거나 즐거워할 틈이 없겠지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되니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회복된 관계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면 환난조차도 즐거워합니다. 환난을 즐거워한다고요?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길로 안내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화해의 손길로 말미암아 모든 즐거움과 소망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