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에 주권(主權)이 있어서 독립적으로 어떤 일을 결정할 수 있어야 주권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도 각자 어떤 일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주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권리나 가치는 시대, 공간, 문화, 권력 등에 따라 상대적이거나 침해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결정한다고 해도 그 결정대로 다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즉 인간의 주권은 절대적이지는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나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주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거나 침해를 받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아주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은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절대적인 주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는가?’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을 족장들과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셨으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복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영원한 약속이 폐하여진 것일까요? 실패한 것인가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고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9:6)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은 육체적이며 혈통적인 약속이 아니라 영적인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해서 아브라함의 상속자였습니까? 그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9:8)
선택 받은 자손 야곱이 약속을 받은 유일한 이유도 하나님의 자비로운 택하심 덕분입니다. ‘택하심에 따른 하나님의 주권’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 모든 근거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그 이유로 선택하신 것이며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를 우리 스스로 충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근거가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얻어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단 1%도 인간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은 폐하여진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약속들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인 믿음이 필요한데 이 영적인 믿음도 하나님의 선택에서 말미암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택하셨으면 택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믿고 싶고, 믿으려 한들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공평’함에 대한 질문이지요. 그런 생각은 관점이 잘못된 것입니다. 공평과 불공평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긍휼, 즉 은혜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긍휼이라는 말의 뜻에는 의무라는 의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긍휼이란 갚아야 할 빚을 갚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은 베푸는 사람의 전적인 자유에 달려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한 기업인이 어느 보육원에서 열 명을 택하여 학비를 지원한다면 이것이 불공평한 처사인가요? 한 부자가 어느 대학에 백 억원을 기부한다면 불의한 것인가요? 그가 베푼 것은 긍휼이며 자비이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죄인이 광복절에 특사로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모든 죄인이 죄 값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다른 죄인들이 ‘왜 나는 특사로 풀어주지 않느냐고 불공평하다’고 항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에게만 긍휼을 베푸시는 것은 불공평하며 불의하다는 말은 모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긍휼을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으신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든 베풀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4~16)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이미 임한 심판을 안다면, 그 죄로부터 우리를 꺼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 느끼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