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는 ‘믿음’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믿음이 없다면 가장 중요한 ‘구원’도 없기 때문이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믿음과 관련한 것들이 많습니다. 말씀대로 몸을 씻어 병이 나은 백부장, 이방인이지만 예수님께로 나아와서 딸의 고침을 받은 사마리아 여인 같은 이야기들이 성경에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요?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구원과 회복과 삶의 목적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영혼들이 많아질수록 바울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잘 하거나 감언이설로 복음이 전해지거나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의 이름에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면 열매는 하나님께서 맺게 하십니다. 우리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할 뿐입니다. 복음과 믿음의 결과는 우리의 설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 열매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감람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 이방인들은 복음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11:17~18) 참감람나무 가지가 꺾여진 곳에 돌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접붙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아 자라게 됩니다. 우리는 그 진액을 통해 지혜와 능력과 안정감을 얻습니다.
우리의 평안과 안정감은 오직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접붙여 주셨으니 얼마나 견고하고 안정감이 있을까요? 바울은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경책합니다.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0절)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계속해서 알아야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결정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머물러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머무르실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진액을 충만히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롬11:23)고 말합니다. 접붙이실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접붙여주신 우리는 날마다 믿음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이지만, 좋은 뿌리를 통해 진액을 공급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접붙여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행위와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전적인 믿음으로 접붙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믿음이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시죠? 우리가 접붙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