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손가락이 아파서 파스도 붙이고 침도 맞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운동 하다가 충격을 받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회복이 더디어 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이렇게 연약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작은 바늘에도 찔리면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립니다. 어떤 충격에 인대가 끊어지고, 힘줄이 늘어나고, 염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또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의 말에 예민하고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화는 어찌 그리 자주 일어납니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처럼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깨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의 재료가 흙에 불과해서 그런가봅니다.
이렇게 사람은 질그릇 같이 미천하고 깨어지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거하십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일 뿐인데 보배를 품게 된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보배를 담으신 이유는 능력이 우리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드러내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파됨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과 박해를 만나 거꾸러뜨림을 당하였지만 끝내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울 안에 있는 보배이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이기에 환난 앞에 낙심할 수 있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복음을 가진 우리는 결국 하나님 나라의 큰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1)
특히 고난은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을 더욱 나타나게 하십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암 판정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부흥집회에서 잠시 후에 말씀을 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연락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두려웠다고 합니다. 집회를 취소하고 빨리 아내에게 가야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너와 너의 아내는 이미 죽은 목숨이지 않느냐?’는 말씀을 주셨답니다. 목사님은 집회를 시작하며 아내의 암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설교를 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사모님도 평안한 얼굴로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기에 예수로 산다’는 고백을 하시더라는 겁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그 후부터 ‘우리는 죽었고 예수로 산다’는 마음으로 목회를 더 힘 있고 자신있게 감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하셨음이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그러므로 우리는 약하고 부족하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더 하나님을 바라보는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6~18)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을 당했지만, 그로 인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바울을 만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명을 얻게되고 삶의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환난과 고난은 우리를 더욱 새롭게 합니다. 겉 사람은 쇠약해 지는 것 같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잠시의 환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것을 이루게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잠깐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을 보는 자들입니다. 어떤 고난과 환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질그릇처럼 초라하고 무력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 같다고 느껴진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