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라는 내용의 글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는 여러 계산법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우주가 생성될 확률)×(지구가 생성될 확률)×(생명체가 발생할 확률)×(인간이 생겨날 확률)×(나의 부모가 태어날 확률)×(나의 부모가 만나게 될 확률)×(나를 구성하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의 값 정도가 되지 않을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확률을 숫자로 표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전혀 수고도 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전혀 수고도 하지 않고 얻은 만물을 누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 있었느냐? 네가 그렇게 많이 알면 한번 말해 보아라 누가 그 크기를 정하였으며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대어 보았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땅의 기초를 받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 외치는 가운데 땅의 모퉁이 돌을 놓은 자가 누구냐? 바닷물이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올 때 누가 그 물을 막아 바다의 한계를 정하였느냐? ... 네가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아침이 되라고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한 적이 있느냐? 네가 땅 끝까지 새벽 빛이 비치게 하여 악인들이 악을 멈추게 한 일이 있느냐? ...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가 보았느냐? 네가 바다 밑바닥을 걸어 다녀 보았느냐? ... 땅이 얼마나 넓은지 네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네가 알면 나에게 말해 보아라. 빛은 어디서 오며 어두움의 근원은 무엇인지 네가 알고 있느냐? 너는 빛과 어두움의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으며 그 근원까지 가는 길을 아느냐? ..."(욥기38:4~20).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치밀하고 정확하게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지혜, 건강, 지식, 감정, 의지, 열정 등도 기본적으로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라적으로도 우리는 경제적 풍요, 민주주의, 주권, 자유를 얻었습니다. 아이티, 캄보디아, 스리랑카, 아프리카와 같이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로 봉사를 다녀보고 작년에 시리아 난민 구호를 하면서 가난과 배고픔, 인권을 잃은 고통, 전쟁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던 난민들의 아픔과 절망을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누리고 있는 안전과 주권과 자유는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들을 누구나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인 줄 모릅니다. 오히려 비교하면서 원망하고 낙심하거나, 또는 교만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6.25전쟁 중에 피난을 가다가 억울하게 인민군으로 오해받아 잡혀서 포로 수용소에 갇한 맹의순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갇힌 포로수용소에서 병든 포로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많은 글과 편지 중에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 본심을 말하면, 내가 괜히 위선 떠는 것처럼 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기 포로수용소가 참 좋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내가 할 일이 참 많다. 내가 그 분과 같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 이런 기도가 있다. ‘주여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제가 어찌 천국을 즐기겠습니까! 주여, 저주 받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어 천국에 들여보내 주시든지...아니면 저를 지옥으로 보내어 고통 받는 저들을 위로하게 하옵소서’”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 중공군 병동의 한 환자는 맹의순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새벽 한 시, 두 시면 늘 병동에 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치료와 간병을 맡았던 사람들도 모두 물러가고 나서 중환자들이 심하고 무거운 고통에 시달리는 그 시간에 선생은 고통을 다스리는 천사로 우리들 앞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하늘에서 보낸 천사였습니다. ...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 더듬 읽어주셨습니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다 그의 얼굴을 보며 그 말씀을 따라 외웠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선생은 마지막 환자들 씻겨 낸 물통과 대야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 순간 먼 곳을 바라보시던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맹의순 선생은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석방 하루를 앞둔 1952년 8월11일에 숨졌습니다. 전쟁이라는 비극, 억울하게 포로수용소에 갇힌 분노,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수고 등 별로 감사할 제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건축하지도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채우지도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심지도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었고 배불리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 않고, 농사하지 않고, 씨 뿌리지 않았으나 열매를 얻었습니다(신명기6:10~11).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만 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나이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