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장을 보게 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언약궤"입니다.
거의 모든 구절마다 들어가 있고, 블레셋이 언급할 때는
"언약궤"와 "신"을 동일시 하여 등장합니다.
문학적인 용어로는 "대칭구조"라고 해요.
여하튼 4장에서는 언약궤가 많이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했습니다.
(시내산에서 언약궤를 받은 이후 항상 언약궤가 진의 앞에서 움직였기 때문)
그래서 이스라엘은 4장 첫부분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밀리자 언약궤를 가지고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언약궤를 가지고 나왔지만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참패를 당하였고, 3만명이 죽었으며, 언약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정말 이스라엘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언약궤가 전쟁일 이길 수 있는 수단이었다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지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언약궤가 전쟁을 위한 수단은 아닌가 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이해하고 있던 언약궤의 성격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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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부적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돌판에 새겨진 말씀이 있는 언약궤이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부적처럼 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부적인 것처럼 여길 때, 빠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언약궤는 있는데 정작 하나님은 없습니다.
4장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함과 같은 고백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궤는 있는데 하나님은 없습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없이 하나님이 주신 그 무엇인가를 의지하거나 하지는 않는지요?
말씀이나, 기도나, 찬양이나, 예배에서 받아 누릴 수 있는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 핵심인 하나님이 거기서 쏙 빠지면,
그 무엇을 한다 해도, 선함도 없고 유익도 없습니다.
우리 신앙도 메마르고 건조해집니다.
일러스트 최정훈 http://www.illustschool.co.kr
말씀을 읽을 때에도, 기도를 할 때에도, 찬양을 할 때에도, 예배를 드릴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의식하고 그분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좋은 묵상 고맙고 좋네요.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좋은 묵상이 될 것 같아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