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산에서 발견되었는데 내려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겨우 겨우 경찰서에 데리고 왔는데 치매 걸린 할머니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경찰이 아무리 봐도 치매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주소를 알아내서 찾아보니 멀쩡히 자식들이 있는 할머니였습니다. 아들이 어머니하고 산에 놀러간다고 하면서 버려두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아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치매 할머니 행세를 했습니다. 산에서 안 내려오고 그냥 거기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보험금을 노린 폐륜 아들이 벌인 현대판 고려장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잘못된 사랑이지만 자식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랐습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받았습니다. 40일 금식은 쉽지 않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40일 금식 기도하다가 돌아가신 목사님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돌판을 주시면서 빨리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급히 내려갔습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춤추고 소리치면서 금송아지에 제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두 돌판을 던져서 깨뜨렸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불로 다 녹였습니다. 금을 녹여서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금가루를 시냇물에 뿌렸고 백성들에게 그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모세는 다시 40일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금식하고 내려 온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시 금식을 해야 했습니다. 이번 금식은 두 돌판을 받기 위한 금식하고는 달랐습니다. 백성을 살리기 위한 죽을 수도 있는 금식이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고 불쌍히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납작 엎드렸다. 마치 아버지가 잘못한 자식에게 큰 매를 들때에, 어머니가 하는 행동 같습니다. “차라리 날 때리세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얘를 잘못 가르쳤어요”라고 하는 어머니의 절규 같습니다. 모세는 멸하시는 것만은 참아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만한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하기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신9:26~29)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달라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한 절규와도 같습니다. 죽게 된 딸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 온 회당장 야이로의 간절한 심정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원망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우리가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악한 백성이었습니다. 우리가 병든 딸, 귀신 들린 딸이었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고, 멸망당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금식하면서 간절히 간구했던 모세처럼, 죽어 가는 딸을 치료하기 위해서 간구했던 아버지처럼,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절규했던 어머니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고, 치료하시고, 살려주시려 절규하신 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당신의 몸으로 회초리를 맞으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던져서 우리에게 향하던 죽음을 막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든 것과 약한 것을 고쳐주시면서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소경과 앉은뱅이와 문둥병자와 혈루병자와 귀머거리를 보시면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해서 먹지 못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백성들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음이 약하고 병이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땅에서 방황하면서, 평안과 구원과 안식을 모르고 고통 속에 있는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눈물 흘리셨습니다. “저들을 멸하지 마옵소서” “내가 대신 죽겠나이다”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시면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아무 자격도 공로도 없어서 죽어야 마땅할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멸하지 마옵소서” 이 외침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외침이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