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시작에 흔히 듣는 설교 중에 하나는 바로 요셉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요셉이야기속에는 성경안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가장 스펙타클한 역전 드라마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비참했던 한 노예 소년이 당시의 강대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
그래서인지 이 요셉이야기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줄곧 꿈을가지라는 설교속에 등장하고
또 지금 현재 남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격의 설교 속에 자주 나타납니다.
얼마전 SNS의 한 글을 통하여 새로운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요셉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만
그는 온 천하가 기근으로 힘들 때에 식량을 나누어주지 않고 창고에 담아 놓고
배고픔에 찾아온 많은 이방 민족듫에게 돈을 받고 팔아서 애굽이 초 일류 국가를 만드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서 이것은 온당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것 아니냐는 글이었습니다.
물론 이 글의 저자의 생각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잘 알거니와 록 펠러를 십일조를 통하여
엄청나게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만 말하는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모습도 함께 연관되어 생각이 되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부를 소유하고 스마트하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만 같은 현대의 설교에 대한 반동이겠지요.
오늘 새벽예배를 인도하러 운전대를 잡고 오는 중에
문득 내 삶은 굳이 요셉과 같지 않아도 된다고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물론 그의 삶이 부럽지 않거나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삶이 요셉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아낼 수도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유명하거나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도 확연한 사회적 지위에 올라가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총리대신이 되지 못한다고 하여
우리 인생이 실패하거나 혹은 잘못 살아낸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셉에게 참 부러운게 하나 있습니다. "형통"이라는 말입니다.
그 단어는 그가 애굽에 팔려갈때도 보디발의 오해로 감옥에 갈 때도
꿈을 해석해 주고도 여전히 감옥에 있을때도 총리로서 그가 일할 때에도 여전히 그의 수식어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도 우리를 형통하게 하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아니.....매우 매우 매우 감사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