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복음은 초창기 CCC의 4영리 전도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물론 이 전도법이 짧은 시간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탁월하고 좋은 전도법이었던 것은 인정할만 합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제시하고 영접하는 것을 더욱 중점을 둔 나머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적이 되어 버렸지요.
아마도 이 영생의 복음의 지식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더욱 강조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한 부분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성도 개개인의 거룩한 삶 즉, 성화로서의 삶에 대하여
그만큼이나 동일하게 강조하지 못한 것이지요.
2019년대의 설교들이 오히려 우리의 행실과 거룩 그리고 대사회적인 책임과 부르심에 대한
설교들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 이에 대한 반향이라고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은 구원과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이 것이 단순히
앞으로 천국을 가게 되는 프리 티켓이며,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는 상관없이
무조건 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을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것은
성경의 전후맥락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죄악과 즐거움 그리고 자신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기쁨과 자랑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복종시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는 헌신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은
그곳 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나안 땅을 선물로 줄 테니 그 곳에서 네 마음대로 살거라!
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이 아니지요.
가나안이라는 곳이 이스라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땅이지만
그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의 탐욕대로 살아갔을 때에는
그야말로 그곳이 황폐하고 어두운 땅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님들의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