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원망해 본 적 있으신가요? 내 잘못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괜히 오해와 불신으로 억울하게 당하고 어디에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으셨나요? 심지어는 나 몰라라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더욱 더 원망과 탄식으로 힘든 적이 있으셨나요?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꼭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보니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여종 하갈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기 아들이므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근심하지 말고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니, 사라가 너에게 말한 대로 다 들어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아브라함은 먹을 것 조금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에게 메워 주고서 아이와 함께 내보냈습니다. 하갈은 길을 나서서 빈들에서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습니다. 먹을 것과 물이 다 떨어지니, 하갈은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면서 아이와 함께 주저앉아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3류 소설에나 나올만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의외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신 겁니다. 하나님이라면 아브라함과 사라를 책망하셔서 하갈과 그 아들을 잘 품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야 할텐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매정하시지 어찌 그렇게 약자를 내어 보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무정한 하나님, 약자를 돌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너무한 듯합니다.
하나님은 원칙대로 결정해서 행하십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입니다. 냉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사라와 하갈은 공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헤어지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아브라함과 롯도 재산과 목축이 많아져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어서 서로 헤어졌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도 안타깝게도 서로 심히 다투게 되면서 서로를 위해서 갈라서는 결정을 내렸습니다(물론 나중에 화해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합니다).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삽니다. 특히나 과거를 정리해야 살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을 잊어야 합니다. 아프지만 끊어야 하고, 버려야 하고, 잊어야 합니다. 과거를 끊어야 오늘에 충실하게 살 수 있으며 미래가 있습니다. 과거에 계속 묶여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잘못, 실수, 어리석음, 거짓말, 간음, 사기도 끊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합리화해서 그 일을 계속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미래는 없습니다.
광야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몇 일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먹을 것과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하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현대적인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남자에게 버림 받고 쫓겨났으니 얼마나 원망스럽고 슬펐겠습니까? 여주인에게는 얼마나 분노가 넘쳤겠습니까? 자기 남편과 동침하라고 한 여주인이 기껏 아들을 낳아주니까 오히려 더 시기할 뿐만 아니라, 이젠 자기가 아들을 낳았다고 쓸모없다고 내 버리는 꼴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또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이라면 아브라함과 사라를 책망하면서 그 행위에 대한 댓가를 치루게 하셔야지, 이제 와서 사라 편을 들면서 내쫓으라고 결정하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이젠 광야에서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아야 하는 하갈의 심정은 괴로움과 분노 그 자체였을 겁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울부짖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라.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노라” 하시면서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샘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 자라는 동안에, 하나님이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셨으며 그는 광야에 살면서 활을 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냉정하게 내보내라고 하신 하나님이 다른 방도가 있었기에 그렇게 하신 겁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을 범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간구할 때 그래도 살 길을 주십니다. 있는 그대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소리를 내면 됩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괴롭다고, 누가 미워서 꼴도 보기 싫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지쳤다고, 못하겠다고, 미치겠다고, 울고 싶다고, 우울하다고, 돈 없다고, 힘들다고 그냥 하나님께 신음 소리를 내면 됩니다. 우리의 세미한 소리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많이 애창되어지고 저도 좋아하는 찬양 <주만 바라볼찌라>라는 노래 가사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찬양 가사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