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재정의 30% 이상을 구제와 선교와 인재양성에 집행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런 원칙을 가지고 있으니까 선하고 귀한 일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에서 지키는 네 번의 절기에 성도들이 드리는 감사헌금 전액은 어려운 이웃과 목회자를 위해서 집행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개척하고 4년 동안 계속 지켜왔습니다.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아프리카 등지에 생명의 쌀을 나눕니다. 국내외에 집이 없는 분들을 위해서 사랑의 집을 지어주기도 합니다. 돼지은행을 운영하고, 생명의 우물을 파서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에 생계를 잇도록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절기마다 동일하게 어려운 성도들을 섬깁니다. 남편을 먼저 천국에 보내고 홀로 자녀를 기르고 있는 샬롬회를 위해서 격려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부활절에는 암으로 투병 중인 가정을 위해서 격려금을 조금 드리면서 기도하고 위로해 드립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금식)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것이 되게 하는 자라하리라"(사58:8-12)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할 때에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일까요?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7)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남자가 수치스런 일로 아내와 이혼해야 할 경우에 이혼 증서를 써주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혼 증서도 써주지 않고 여자를 내보내면 그 여자는 새로운 삶을 시작도 못하게 됩니다. 고대에는 이혼한 여자들은 이혼 증서 없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했다하면 간통한 것으로 간주해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함무라비 법전을 보면 남편이 아내를 싫어하게 될 경우 그녀와 이혼하여 집에서 내보내거나 신분을 노예로 전락시켜 데리고 있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여자의 인권과 안전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힘과 재물을 이용해서 일부다처와 이혼을 악용하고 여자들의 인권과 평안을 짓밟았던 사회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자의 권리를 완전히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을 하나님은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주면서 그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서 그 가족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을 막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빌려 준 값어치 이상의 것이나, 가족만의 가치와 추억이 있는 물건이나 생계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챙기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전당물이 겉옷일 경우에는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는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품꾼들에게 품삯을 줄 때에는 다음 날까지 넘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처자식이 있는데 그 날 저녁에 아무 것도 들고 가지 않으면 가장으로서 얼마나 비참할까요?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한 묶음을 밭에 잊어버리고 왔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를 딴 후에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런 율법을 주셨을까요?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게 하셨습니다.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자상하고 세밀하게 배려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위에 쓴 것처럼 집행하려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예배당에도 쓸 곳이 왜 없겠습니까? 오래되어 낡은 의자, 언바란스한 방송 음향 장비, 수명이 거의 다 된 텔레비전 모니터 등 교체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소한 10년 이상 씩은 사용을 했습니다. 성가대 단상 작업, 예배당 청소 등도 성도들과 교역자들이 함께 수고하여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할 때에, 우리 성도들이 잘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면서 율법의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되십니까? 냉정하고 기계적이며 딱딱한 원칙들만 나열된 것이라고 여기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 하나하나에 인간미와 세밀한 배려가 배어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고 말씀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당신이 알아서 챙기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챙기시도록 하겠습니까? 당신이 스스로를 헤아리는 힘겨운 인생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헤아리시는 인생을 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챙겨주시고, 헤아려주시는 멋진 인생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