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집으로 데려온 유기묘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이 유기묘를 데려온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유기된 이유로 애착에 대한 결핍이 매우 큰 고양이였다는 것을 데려와서야 알았습니다. 처음에 우리 집에 와서는 한동안 소파 뒤에 숨어서 ‘쨍쨍’거리면서 울기만 했습니다. 그 아이 이름이 왜 ‘쨍이’인지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 고양이 용품을 사는 것과 사료를 대는 것과 아프면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돈도 꽤 많이 들었습니다. 반려동물 보험이 없다보니 한 번 병원에 가면 몇 만원에서 많게는 몇 십 만원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래도 참을만했는데 야행성 동물이라서 새벽에 잠을 안 자고 쨍쨍거리며 우는 날이 많아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서 하루가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다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사울이 암몬족속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에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길갈에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긴 연설을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정직하고 의롭게 다스렸다고 증언하였고 백성들은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열조들을 인도하시고 구원하신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그렇게도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백성들은 죄악과 불순종을 행하게 되면서 이방인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탄식하며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나 사사와 같은 지도자들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급기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방나라들처럼 인간 왕을 구하게 됩니다. 사무엘은 백성들과 세워질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섬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치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12:12~15)
하나님이 우레와 비를 보내셔서 사무엘의 연설에 힘을 실어주시자 모든 백성이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왕을 구한 일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백성들은 잘못했다고 두려워하면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자신들을 죽이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왕을 다시 돌이킬 생각은 없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삼상12:20~22)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도 속을 썩이고 불순종하고 타락하고 우상숭배를 범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그 사랑은 또한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집으로 데리고 온 고양이를 몰래 집 밖으로 내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지만 아직도 고양이를 데리고 사는 이유는 딸 하주 때문입니다. 하주는 ‘쨍이’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예뻐하면서 고양이를 물고 빨고 안아주고 같이 한 이불을 덮으면서 잡니다. 고양이가 오줌을 이불에 싸서 지린내가 나는데도 하주는 그 냄새가 싫지 않나 봅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우리 집 고양이를 버릴 수 없습니다. 내가 고양이를 버릴 수 없는 것은 하주를 버리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사랑이며 약속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