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정직하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약한 자를 속이지 말라고 하시면서, 두 종료의 저울추나 되를 사용하지 말고 정확하고 공정한 것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건을 구매할 때에는 큰 저울추나 큰 되를 사용하여 많은 양을 얻은 후에, 일반인에게 판매할 때에는 작은 추와 작은 되를 사용해서 부당한 수익을 올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네 날이 장구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증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언 11:1)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시편5:6)
하나님은 약한 자를 괴롭히고 속이는 죄를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선량한 백성인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은 아합 왕과 이세벨의 가증한 사건이 성경에 나옵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서 다른 땅과 바꾸거나 팔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나봇은 거절합니다. 땅은 매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조상의 유업이므로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했습니다.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밥도 거르고 노심초사했습니다. 부인 이세벨이 가당치 않다고 하면서 악한 꾀를 냅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신데,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노심초사하나이까?” “내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습니다. 내게 맡기십시오”라고 하면서 이세벨은 왕의 이름으로 나봇과 함께 사는 성읍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불량자 두 사람을 포섭해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하고 나봇을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고 지시합니다. 이 지시대로 나봇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합과 이세벨은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엘리야의 예언처럼 전쟁터에서 죽은 아합의 흘린 피를 개가 핥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세벨 역시 이스라엘 새로운 왕 예후에 의해서 왕궁에서 내던져져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세벨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었고, 예후가 그의 시체를 짓밟았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피를 개들이 와서 핥아 먹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아말렉을 기억하고 그들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말렉은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할 때에 공격을 했습니다. 2백만 명이 넘는 무리 중에서 뒤에 쳐지는 부녀자들이나, 환자들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말렉의 군대는 이스라엘 무리에서 뒤쳐진 약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공격했습니다. 전쟁이라 해도 윤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무시한, 반인륜적인 악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것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짓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괴롭히는 악한 자들의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역사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천국에 가서 이 땅에서의 삶을 동영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모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살려주시고, 도와주시고, 구원하신 사건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괴롭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사람이 살면서 두려워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역기능적인 환경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는 질병, 실패, 불합격, 부도, 이별, 노후,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진학은? 그 다음에 취업은? 그 다음에 일의 성공은? 결혼은? 자녀는? 집 장만은? 대출금은? 이자는? 사업은? 장래는? 노후는? 등등 두려운 일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녀를 키우면서는 자녀가 잘못된 짓을 하지는 않을까?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자녀의 학업, 진로, 취업, 결혼, 출산, 집장만 등등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사람은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 분이 내가 두려워하는 사건과 사고와 질병과 장래와 죽음을 넘어서는 분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고백은 영광스러운 깨달음이며 지혜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나님은 사랑과 평안의 아버지이지만, 사단은 두려움을 주는 악한 존재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미래와 장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