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우리 교회가 있는 상가의 지하 소화전이 터져서 1층과 주차장에 물난리가 났습니다. 상가 입구와 주차장이 꽝꽝 얼려진 얼음으로 덮여졌습니다. 한 이틀이 지나도 녹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연탄재를 뿌려놓기는 했어도 우리 성도들이나 사람들이 건물을 오가다가 넘어져서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금요일 낮에 우리 교역자들과 두어 시간 정도 삽질을 했습니다. 얼음을 깨고, 염화칼슘을 뿌리고, 얼음을 녹이면서 제빙 작업을 했습니다. 건물주가 인건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상가 건물에 함께 있는 세입자들이 나와서 함께 하는 것도 아니어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쉬어야 하는 일요일에 왜 교회를 가냐?’ ‘청소하고, 전도하고, 오후에 또 예배를 해?’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오히려 교회가면서 돈까지 내냐?'라고요. '교회에서는 명절이라고 쌀과 생필품을 나누고, 부활절이다 추수감사절이다 성탄절이라고 하면서 퍼다 주기만 하면 당신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 알아주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진정성을 훼손하고 폄하하려는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권합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으로 이익과 수익을 챙기라고 자극합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영업하면 되는데 굳이 고지식하게 할 필요가 있냐고 합니다. 세금 신고 액수는 가능한 줄여서 덜 내라고 하고, 혜택은 철저히 챙기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혼 신고하면 배우자의 수입이 안 잡히니까 법적으로만 이혼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논리를 가지고 계산기를 두둘기면서 손해 보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익이 되고, 득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하라고 합니다. '그냥 빠져, 하지 마, 적당히 속여, 모른다고 해'라고 속삭입니다.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걸어서 건너는 기적의 사건을 듣고 가나안 사람들과 모든 왕들이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으며 2백만 명 이상 히브리인들이 코앞으로 닥쳤으니 그들은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나안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회를 노리다가 기습적인 공격이나 대대적인 전략 전술로 대처를 할 것입니다. 가나안 거민들도 틈과 기회를 살피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나님의 명령은 공격과 또 다른 진격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뚱맞게도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을 때에, 철저한 공격으로 완전히 몰살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할례가 뭐라고, 지금 이 상황에서 할례를 행하라는 말입니까? 가나안을 다 정복한 후에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면 그 때 가서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으면 광야에서 진작 할례를 하고 왔어야 하지 않나요? 왜 하필 지금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까?
할례는 남자들의 생식기의 포피를 자르는 것입니다. 생살을 자르기 때문에 상처부위가 아물고 나으려면 최소 몇 일은 걸립니다. 생후 8일 된 어린 아이부터 성인 남자에 이르기까지 다 할례를 행하게 되면 모든 남자들은 꼼짝도 못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가나안 거민들이 공격해 온다면 맞서 싸워야 하는데, 병력들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무장해제의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서 극도의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무슨 생각으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부싯돌로 만든 예리하게 날이 선 많은 칼들과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진통제 등이 있어야 할까요?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과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을 하시며 친히 행하시기도 합니다. 신앙은 불합리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이시며,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전적으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가다가 칼을 든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바로 여호와의 군대장관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행하여 꼼짝도 못하고 있는 동안, 여리고 앞에서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행했어도 결코 가나안 족속들이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군대장관을 보내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나를 멈추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의 소출을 먹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약속의 증표입니다. 오늘날의 할례는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6:15)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