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사이다보니 누구보다도 교회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고, 교회의 명과 암을 나름대로 경험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험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저자 필립 얀시는 교회에 대한 상처와 부정적인 요소 때문에 교회를 떠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교회 안에서 겪은 권위의식, 편견, 근본주의, 위선들로 인해 교회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저자의 교회 방랑기, 교회를 걷돌게 된 시절, 교회에 대한 실망감이 내게 많은 공감이 되었다.
저자/ 필립 얀시, 옮긴이/ 윤종석, IVP
1장에서 자신의 '교회 방랑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가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시절의 경험과 고민들이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교회를 완전히 떠날 수없는 이끌림에 의해서 저자는 진짜 성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배우자, 부모, 자녀가 불완전하다고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저자는 교회를 버릴 수 없었다고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서로를 살펴보고, 교회 밖을 보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이 혼자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혼자 할 수 없다'(폴 투르니에)는 것이다.
2장에서는 '하나님의 스케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교회를 다양한 은유로 표현한다.
'하나님의 12단계 모임- 알콜 중독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서로 의존하며 격려와 힘이 되는 모임'
'하나님의 운전면허 관리공단- (미)운전면허 시험장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
'하나님의 응급 진료소' '하나님의 전철- 부촌과 빈민가를 다 운행하는 전철 같다는 의미'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선수 탈의실- 경쟁이 아니라 승리 팀의 선수 탈의실처럼 기뻐 환호하는 곳'
'하나님의 복지 사무소' '하나님의 동네 단골집'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몸'이 가장 정확하고 적합한 성경적인 은유라고 말하고 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고전12:12)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된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야 하는 곳이란 말이다.
교회는 죄인들의 모임이지만 함께 할 때 힘과 격려가 되므로 서로를 필요로 한다.
교회를 통해서 다양하고 복잡한 사람들을 만나며 이해와 포용과 용납과 사랑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대명제를 말하고 있다.
자녀는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가족의 권리를 얻고, 실력이 모자란 아이라고 집에서 내쫓지 않는다.
헨리 나우웬은 공동체를 "가장 함께 살기 싫은 사람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이라 정의했다.
3장에서 교회는 '벽을 넘어서'는 눈물과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성도의 '과민성'과 '둔감함'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아파할 때에 예민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과민성이다.
그렇지만 그 과민성에도 굳은 살이 생겨야 한다는 논리다.
너무 과도하게 예민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위험 신호 점검을 하라고 권한다.
자칫해서 사람보다 사람의 고통에 더 관심을 쏟지 않는가를 묻고 있다.
'구세주 콤플렉스'가 그런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단다.
특히 사역자들의 가장 위험한 두 가지 동기가 죄책감과 구원하려는 욕심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죄책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나님만이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요즘 나는 이 세상에 교회 같은 공동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찌보면 가족이나 친척보다 더 자주 만나고 교제를 나누는 존재가 교인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만나서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밥도 같이 먹는다.
(물론 요즘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현재는 자유롭게 할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그리고 2대 혹은 3대 가족으로서도 만나는 공동체가 교회이다.
교회를 통해서 세대를 통합하며 어우러지게 하는 지혜의 현장을 경험하게 된다.
현대인들에게 더욱 필요로 하는 곳이 교회라는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