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 양을 훔쳤다가 팔았으면 소는 다섯 마리로, 양은 네 마리로 갚아라’ ‘도둑은 도둑질한 것을 갚고 갚을 것이 없으면, 종이 될 것이다’ ‘가축이 다른 사람의 밭이나 포도원에서 풀을 뜯어 먹었으면, 짐승의 주인은 자기의 밭이나 포도원에서 가장 좋은 농산물로 배상하라’ ‘불이 옮겨 붙어 이웃의 곡식이나 밭을 태웠으면, 불을 낸 사람은 배상하라’ 이외에도 구약의 율법에는 재산권에 관한 사회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산의 권리라고 하지만 이것은 사람 사이에서 존중에 관련된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피부색과 인종과 종교와 학력과 재산 여부와 직업과 장애의 여부와 상관 없이 사람 자체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율법에서는 사람의 재산과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헌법으로 정하고 존중하고 있습니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다. 법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운전할 때보면 그것이 많이 나타납니다.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거나 끼어드는 차량 운전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양보하기, 위협 운전 안하기, 정지선 지키기, 속도위반 안하기 등은 사람에 대한 존중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높습니다.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0만 명당 4.1명으로 OECD 평균보다 약 3배 높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세계1등입니다. 우리가 아직 사람 존중이 부족하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토론이나 대화할 때에도 사람을 존중하면서 말해야 합니다. 자기 말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주기, 다른 사람이 말할 때에 끊지 않기, 가능한 끝까지 들어주기, 상대방의 말에 반응해주는 것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서 ‘틀렸어’ ‘아니야’라는 말은 가급적 안해야 합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가 지구가 네모라고 주장하면 그냥 들어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다 압니다. 본인도 알 때가 옵니다. 물론 좋은 기회와 분위기가 되면 말해줄 필요는 있겠지요. 대화할 때는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라고 하면서 말해야 합니다. 토론이 끝난 후에도 자기 생각을 계속 주장하지 않아야 하고, 몇 마디 말로 다른 사람을 이겨 먹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로 사람을 이겼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께 그 사람을 맡기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든, 나 자신이든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존중하면 그것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우리 속담에도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으며 성경에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절과 정직과 공경으로 존중하면 내게로 돌아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이 돌아옵니다. 부모에게 막말하고 소리치고 불효하면 자녀들에게 당하게 됩니다. 아내를 존중하면 남편에게는 아내의 순종으로 돌아옵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면 남편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며, 믿음의 식구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2:7)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이 땅에 섬김을 받으려고가 아니라 섬김려고 오셨으며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그렇게 존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에서 말씀하는 또 하나는 신뢰입니다. 사람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우선 정직해야 합니다. 이솝 우화를 보면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했다가 정말 늑대가 왔을 때에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제재를 받는 이유도 정직하지 않아서 신뢰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을 신용사회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신용 카드를 많이 사용해서가 아니라 정직해야 하는 사회이기에 그렇습니다. 정직하면 성공하는 사회가 선진국입니다. 우리 사회에 편법과 불법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선진화된 사회입니다. 우리부터 음원, 영화, 게임, 사진 등을 불법 다운로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논문, 글을 함부로 복사하거나 도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위장 전입 안하기, 이중장부 안 쓰기, 세금 잘 내기도 해야 합니다. 국가청렴도가 우리나라가 아직도 세계에서 하위권입니다.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동의 몇 개 나라가 국민소득이 7만, 10만 불이 되어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부정부패가 없고, 안전한 비즈니스 환경이 되어져야 일하고, 투자하고, 사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경제도 활성화 됩니다.
율법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면 믿을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웃이 맡은 짐승이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가도 본 증인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께 맹세하면 그대로 믿어야 했으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맹세하면 믿어주었고,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이상적인 사회입니까?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맹세를 해도, 법정에서 위증하지 않겠다고 선서를 해도 사실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사기, 폭력, 강도, 강간,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곳이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신뢰할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조현삼 목사님이 새가족들에게 하는 인사말이 기억납니다. 새로 등록한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믿지 않겠습니다” 그게 왠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처음 보는 성도에게, 은혜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 찾아 온 성도에게 믿지 않겠다는 말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그 말을 한 후에 계속해서 “그러나 사랑하겠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목회할 때, 그리고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에서도 사람들로 인해서 겪었던 힘겨운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성도들에게 고백합니다. “믿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겠습니다” 사실 목사인 나 자신도 못 믿습니다. 나도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를 믿지 마세요, 그러나 사랑해주세요, 기다려주세요. 기도해주세요”
신뢰할만한 분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다지만 거짓과 잘못과 실수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연약함과 죄성이 있습니다. 맹세는 내 의지와 결단입니다. 결단이 과연 몇 일이나 가던가요? 아무리 맹세한다고 해도, 무엇으로 맹세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지와 결심은 약하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으로 덮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덮여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덮여져야 더럽고 추악하고 냄새나는 악한 본성이 덮여지게 됩니다. 성령으로 덮여져야 용서와 위로와 격려도 되고,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