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도 테니스 치면서 공이 나갔느냐 나가지 않았느냐 실랑이를 벌이면서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럼 화가 나고, 그 목사하고는 치기 싫고, 속으로 욕이 나옵니다. 세계대회처럼 호크아이가 있어서 카메라로 찍어서 녹화된 화면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짓된 인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은 거짓되고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롬3:3~4) 사람이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하나님의 존재와 신실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 하나가 전부 의롭다고 증명될 것이며, 심판 때에 사람은 거짓되고,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이 증명된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밤늦게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술에 취한 사람을 때리고 돈을 빼앗아서 도망갔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그 사람의 범죄행위가 CCTV에 다 찍혀서 꼼짝없이 죄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운전 중에 과속하거나 신호 위반을 했는데, 집으로 날아온 과태료 고지서에 카메라에 찍힌 차량 번호와 사진을 보면 꼼짝없이 벌금을 내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CCTV는 얼마나 정확할까요? 하나님의 CCTV에 찍힌 행위를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내 보이신다면, 누구도 변명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심판 앞에서 사람의 거짓은 드러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게 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2008년에 세계 최빈국인 아이티에 진흙 빵을 먹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구제하려고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동네에서 쌀을 나누다가 쌀이 떨어져가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초조함을 넘어서서 분노에 서린 눈을 보았습니다. 소요나 폭동이라도 날 것 같은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우리 팀은 트럭에 있던 쌀을 버리듯이 집어 던지고 부리나케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탄 트럭에 한 아이가 매달렸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하는 그런 독기 어린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전 속력으로 달리는 트럭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아이 하나 죽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멍이 나서 나누지 않았던 쌀 포대를 트럭 밖으로 집어 던지니 그 아이가 그것을 집어 들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똑 같은 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입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이 술고래, 악당, 간통자, 살인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상’ ‘성품적으로’ 착하고, 모범적이고, 순종 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수영해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 수영을 조금 할 줄 아는 사람, 수영선수 조차도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 겁니다. 누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까지 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십 보 백 보입니다. 즉 사람에게 도덕성과 윤리성이 있어서 좀 착하고, 성격이 온순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의로움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태평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죽음의 바다를 누구도 건널 수 없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길을 잃었고 똑같이 정죄를 받아 멸망할 운명입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과 행위는 참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은 참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과 행위와 생각은 모두 거짓됩니다. 우리는 거짓되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택하셨고, 이끄시기에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6:44)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즉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고백, 행위, 예배인가요? 우리 안의 기쁨, 교제의 즐거움, 봉사인가요? 물론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 구원의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당신이 예수를 마음으로 믿나요, 그리고 입으로 고백하는가요? 그럼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 고백은 참되신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이므로 참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거부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