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에 가서 쌀이나 구제품을 무작위로 나누면 큰 혼란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현지 선교사님을 통해서 만든 일련번호와 도장이 찍힌 쿠폰을 만들어 미리 나누어주고 구제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발행해준 쿠폰이 헛것이 되고 약속이 파기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에게나 나누어 주거나, 나누는 사람이 임의대로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면 말입니다. 약속으로 쿠폰을 받았던 사람은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할까요?
성경에서는 믿음이 약속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 되었느니라”(롬4:13~1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상을 다 맡겨주시면서 복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 것이죠. 만약 구원이 율법으로 받는 것이라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한 약속은 헛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만일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구원받는다면, 믿음은 쓸모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라고 하셨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4:16)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와 동일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믿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4:18)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4:21)
믿음은 이성을 초월합니다. 동시에 믿음은 확고한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세뇌시켜서 이것은 믿어야 하며, 저것은 믿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과 문제가 있음에도 아무 것도 아닌 척하거나, 침착한 체 행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어떤 대상을 믿는 것 혹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합리적인가는 신뢰의 대상이 믿을 만한가에 달려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대상이나 존재를 믿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입니다. 만약 교도소를 방문한 대통령에게 한 죄수가 사면 약속을 받는다면, 믿을만하며 매우 합리적인 근거를 가집니다. 그런데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다른 죄수에게 사면을 약속 받았다면, 믿을 수 없으며 그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근거입니다. 똑 같은 내용도 누구에게 약속을 받았느냐에 따라서 믿을 만한가의 신뢰가 결정되는 것이며 합리성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 약속, 능력을 믿는 것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믿음이 견고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상상해야 합니다. 모든 약속의 배후에는 그 약속을 하는 존재의 격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점을 알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믿음은 흔들리고, 순종은 불완전해서 오락가락했지만, 그래도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현실 상황에서 도망쳐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으며, 아내가 아이를 임신할 수 없다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사실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무턱대고 믿는 것은 자기 신념이나 확신이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칠 때도, 하나님이 능히 아들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이 핵심입니다. 즉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와도 연결됩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3~24)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훨씬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창조와 예수의 부활이 기록된 성경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더 수월합니다. 우리에겐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으로 충분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