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를 준비하려고 이번 주 로마서 본문을 읽다가 막막하고 답답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전문적으로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꽤나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11:25) 바울은 지혜가 있다고 하는 자들이 신비를 알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 신비라는 것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은 우둔한 채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이방인 중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의 수를 가리킵니다. 그들이 다 돌아올 때까지 이스라엘은 우둔한 채로 있게 된다는 말에 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택한 백성이 우둔하게 되는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인데, 믿음의 조상을 둔 이스라엘인데’ ‘하나님이 잘못 택하신 것인가? 하나님이 실수하셨나? 그렇다면 하나님이 후회하실까?’ 등등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답변을 줍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 하나님은 행하심과 구원하심과 내버려두심까지 모든 것에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나를 자녀 삼으신 것도 후회하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자녀를 낳고 후회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녀가 간혹 말 안 들을 때도 있지만 후회가 들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그 자녀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마음보다는 자녀로 인해서 감사하며 사는 분들이 대다수인 것을 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부모가 되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알 듯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시며 약속을 반드시 실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11:30~31)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데도 긍휼을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불순종으로 이스라엘에게 긍휼 베푸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푸시게 됩니다. 이런 역사가 반복되었으며 앞으로 완성되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순종 잘 하는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참 아이러니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를 선택하셔서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순종 잘 해서, 잘 믿어서, 착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순종 할 때에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연약할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신 이유를 아십니까?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이유를 아십니까? 욥이 고난당한 이유를 아십니까? 젊은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 땅에 와서 제대로 전도 한 번 못하고 왜 죽어야 했습니까?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죽음을 당한 젊은 선교사들은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왜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이해가 안 되는 사건 사고들을 하나님은 왜 허락하시나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예수가 믿어지게 되었는가요? 성경이 믿어지는 것이 신비가 아닌가요?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어떤 이유로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아나요? 인간 신체의 비밀을 아나요? 창조를 보았나요? 천국을 보았나요? 그런데 창조가 믿어진다면 신비가 아닌가요? 이것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의 역사가 믿어지는 것에 감사합니다. 예수, 성경, 창조, 천국이 믿어지는 것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