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보물 같은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2~7) 이 얼마나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즉 우리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다고 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교회(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한다면 우리의 즐거움과 행복은 없는 것인가요? 하나님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욕심쟁이가 아닌가요?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했다면 너무 자기중심적이지 않나요?
만약 우리 자녀들이 기쁘고 즐겁게, 자신의 역할을 다 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떤가요? 자녀가 그의 삶을 건강하고 보람 있게 살아간다면 그 자녀가 불행한가요? 그 자녀는 정말 행복할 겁니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 의미와 보람이 있고, 누군가에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 때에 행복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부모는 어떨까요? 역시 기쁘고 행복할 겁니다.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은사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부모에게 영광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이 의미 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건강하고 보람된 인생을 산다면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이며, 그런 인생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이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 혼자 영광을 차지하고 우리는 존재도 없이 노예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행복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40:16)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뵙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대상16:29) 예배는 우리가 누리는 가장 아름다운 특권이요,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일까요? 개그맨 유재석 씨를 ‘유느님’이라고 하면서까지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봅니다. 유명 인사의 사인 받는 것을 사람들은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셔서 복을 주십니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렘31:12)
우리는 먼저 공동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으로도 예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충성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영적인 예배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노예이거나 노예 경력을 가진 자가 70%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노예들이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었는데, 그들이 노예의 삶을 벗어나려고 투쟁한 것이 아니라 노예의 일을 신령한 예배로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주인을 섬기고, 노예의 일을 하나님의 일처럼 했습니다. 주인들이 감화를 받고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신앙 양심상 노예를 붙들어 둘 수 없어서 많은 노예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이렇듯 노예 일도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세상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입니다. 예배가 우리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재정, 건강, 시간, 일, 관계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