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비회원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협동 사회다’라고 윌리엄 템플(성공회 대주교)는 말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세상을 위해 교회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면 세상에서 교회는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해야 할 궁극적인 사명과 책임은 무엇인가요? 교회는 예수님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존재함으로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선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직접 전하면서 예수님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우리는 복음을 직접 전하면서 예수님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계 역사가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을 빚을 갚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4~15) 교회된 우리도 물려받은 엄청난 복음의 유산을 흘려보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건져야 하는 사명입니다. 얼마나 막중하면서도 소중한 사명입니까? 다른 것으로는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육, 구제, 먹을 것, 살 집을 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오직 복음만을 전해주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바울은 심지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9:16~17) 우리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과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물론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교회에는 섬김과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섬김과 봉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비유를 보면 강도 만난 유대인을 사마리아인이 구해주고 도와줍니다. 자기 생명이 위협받고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을 무릅쓰면서 섬김을 실천합니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이며, 끝까지 책임지는 섬김이었습니다(눅10:30~37).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목적을 섬김과 봉사에 두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재갑 교수(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전문의)는 세상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고민하다가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능한 해마다 의료 선교를 하고 있으며, 국제협력의사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는 의료 선교를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고민했으면 합니다. 어떻게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안정된 삶을 살 것인가 보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따라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정욕 그 자체가 악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세상 앞에서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우리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고, 빛은 어두움을 쫓아 버리고 접근을 막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선한 행실을 똑바로 하면, 악이 만연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이 제 구실을 못하니 그 성이 부패하고 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썩은 과일 한 알로 인해 과일 상자가 다 썩어 버리고 맙니다. 폴 스티븐스(캐나다 리젠트 칼리지 명예교수)는 ‘교회의 선교에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의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가 없는 상태에서 각 요소는 효과가 반감될 수 있으며 치명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소속이 세상은 아니지만, 세상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가 세상에 속해버리면 교회는 그 힘과 사명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면 세상을 위해 그 생명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는 세상이 속히 심판 당하는 일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비아냥거린다.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보여주면 믿겠다’라고 도발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오감으로 파악하고,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들은 과학적 연구가 아닌 것은 무엇이든 의심하고, 거부하라는 세상의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세상과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을 가시적으로 계시하고 계십니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성경을 통해서도 분명히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비웃으면서 ‘자연, 양심 물론 있지, 예수, 성경 그것 참 좋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 주는 다른 것은 없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1~16)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는 예수님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