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예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제하며 함께 삶을 공유하는 경험하기를 바라십니다. 진정한 교제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제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며,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 이상입니다. 교제는 함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제는 소그룹이면 좋습니다. 예수님도 열 두 명의 제자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순모임, 성경공부, 교사, 성가대, 주일학교 소모임을 통해서 교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소그룹에 속했다고 무조건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공동체’라고 선언했지만, 그렇다고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순모임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며 더욱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공동체에는 ‘진정한 교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교제란 무엇일까요? 첫째, 진정한 교제에는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는 영어로는 ‘speaking the truth in love’ 즉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진실하게 이야기할 때만 진정한 교제가 가능합니다. 만약 교회에서 진실함 대신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고, 본래의 모습을 숨기면서 자기 방어를 하고, 겉치레의 친절을 베풀면서 얕은 대화를 나눈다면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경계하면서 자신의 삶이 별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는 진정한 교제를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친밀함을 위해서 음주를 하면서 친해지려고 합니다. 물론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지만, 술 때문에 관계가 깨지고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술 없이도 솔직하게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움, 거절,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늘 그 상태에 머물게 되며 진정한 교제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려워도 그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진정한 교제에는 서로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12:25)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의 몸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모든 지체는 다른 지체들에게 의존합니다. 우리의 손과 손가락은 발에 의존합니다. 예를 들어서 테니스를 치려면 손과 손가락으로 라켓을 잡지만, 발로 달려가야 공을 칠 수 있습니다.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지만, 손으로 리모컨을 잡아서 손가락으로 눌러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필요하고, 서로 의존하는 관계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한 성도는 함께 걸어가며, 함께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진정한 교제에는 사람을 ‘공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3:12)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하는데, 한마디로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에서 느끼고 살펴주며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 그렇구나” “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구나”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해주고 이해해 줄 때마다 교제를 쌓아갑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충고나 도움이 아니라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 고통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때때로 너무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때문에 공감할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또는 스스로의 상처와 연민에 묶여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 메마르게 됩니다.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히10:33~34) 우리가 서로 가장 필요한 때는 심각한 위기, 깊은 슬픔, 그리고 오해를 받을 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너지려고 하는 바로 그때에 믿음의 친구가 가장 필요로 합니다. 진정한 교제를 통해서 해소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진정한 교제를 통해 사람들은 ‘사랑’을 경험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3~14) 교제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진정한 교제에서는 우리의 실수가 드러나도 사랑으로 덮어집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괴로움과 분노가 교제를 기본에서부터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 없이는 교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줄 때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나의 에너지를 복수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해결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두 가지 모두를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용납하고 용서해도 당장 신뢰가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도 용서하기를 원하시지만 바로 신뢰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십니다. 신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당장은 아니지만, 다시 쌓아 가면 됩니다. 신뢰를 배우고 쌓기에 가장 좋은 곳은 믿음 안에 있는 순모임 같은 소그룹입니다.
진정한 교제에 헌신되어 있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맛볼 수 있습니다. 소그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풍성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 중의 하나가 소그룹입니다. 소그룹 안에서 진실함, 돌봄, 공감, 사랑을 경험해보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