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느 학교에 가야 하는가? 어느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회사를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사업을 하는 것이, 그리고 어떤 사업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사업을 그만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이런 고민과 기도 제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하면서 놀라워했습니다. 전통적인 랍비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자가 어떻게 율법을 잘 알고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고 하면서 당신의 교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의 고난과 핍박과 죽음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 합니다. 나 자신과 가족,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 고민이나 기도 없이 그저 자기의 판단과 습관대로, 사회적인 유행과 가치관대로,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뜻대로,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묻고,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당신에게 그런 고민이 있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그 판단의 기준을 이렇게 일러주십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7:18) 하나님의 뜻의 기준은 그것을 하는 이유가 자기 영광이냐, 하나님의 영광이냐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나의 기쁨이냐, 하나님의 기쁨이냐 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주일 중식을 준비하려고 봉사를 맡은 순에서 여러 분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왜 나왔을까요? 토요일에 주방봉사하면 두 세 시간은 봉사해야하고 몸이 피곤합니다. 내 기쁨을 좇는다면 나오기 어렵겠지만, 하나님의 기쁨을 좇아서 나왔을 것입니다. 성가대, 교사, 찬양팀, 전도대로 봉사하는 것이 누구의 기쁨이냐 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기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것을 해야 하고, 가져야 하고, 가야하느냐를 생각하면서 나의 영광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아름답게 이루며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판단 기준은 이것입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눅7:22~24)고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안식일의 율법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고 병상을 들고 가는 것 때문에 병에서 치료받은 사람을 심하게 책망할 정도로 율법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스러웠던 사람의 아픔과 슬픔과 절망에 대해서는 긍휼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병자의 치료와 회복에 기뻐하고 축복하지 못했으며, 안식일에 율법을 어겼다고 하면서 예수와 변론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래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난지 팔 일이 되면 할례를 행하라는 율법이 있기 때문 입니다. 안식일이라고 해도 할례는 거룩한 노동이기 때문에 할례를 행해도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면서 왜 사람의 온 몸을 치료하는 일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질병 때문에 안식일에 진정으로 안식하지 못하는 자에게 안식을 주었건만 왜 안식일을 어겼다고 하느냐는 말씀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을 만들어서 더 구체화시키고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장로의 구전과 가르침을 만들어서 더 실제화 시켰습니다. 율법 이상의 것을 만들어서 지키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작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모세도 알지 못했고, 하나님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요7:24)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나 형식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표준으로 판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올바른 표준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정의이며 공의입니다. 성경은 라틴어로 캐논입니다. 캐논은 정확 무오한 표준, 기준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하면서 성경을 외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자녀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남편에게, 아내에게, 원수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외모와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표준으로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생각, 판단,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말씀으로 기준 삼으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풍습, 유행, 가치관으로 기준 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표준되라고 하셨습니다. 배우자, 친구나 연인의 뜻과 마음을 알려면 자주 대면하고 대화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새들백교회 릭워렌 목사는 “하나님의 뜻은 어떤 느낌이나 공식에 있지 않고, 우정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미 이룬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최고의 뜻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과 기도를 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 가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