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시던 들판이나 갈릴리 호숫가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기적을 베풀던 현장과 병자를 치료하던 곳에도 역시 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나사로를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말씀과 이적을 베풀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예수를 대적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기득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한 대제사장들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를 희생 제물로 삼기로 모의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벌이는 마르다와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동생 마리아는 예수를 영접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를 대접하려고 열심히 일을 하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마르다와 같은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일이 되어 지고, 사건이 해결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이 안 하면 내가 하면 된다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누가복음을 보면 마르다는 마리아가 일도 안하고 자기를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왜 마리아는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고 저만 분주하게 일해야 합니까?” “마리아에게 말해서 저를 도와주라고 해 주십시오”라고 원망 섞인 푸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자신에게 좋은 일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가 말씀을 듣지 않고 일을 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신 것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한 것에 대한 책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르다도 그 한 가지 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면 됩니다. 마리아가 일을 안 하고, 도와주지도 않은 것 때문에 원망 불평을 한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울광염교회에서 사역할 때에 ‘싸우면서 일하려거든 일하지 말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공감되는 말입니다. 만약에 교회 건축을 한다고 하면서 교회가 화평하지 않고 싸움과 분쟁이 일어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교회는 선교와 구제를 꼭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교와 구제를 하려고 만약 싸움과 분쟁이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명분이라도 안 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일하지 않고 화평하고 평안하게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늦는 것 같지만 기다리면 오히려 더 아름답게 일이 되어 집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양육, 진학, 학원, 유학 등을 위해서 부모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합의하지 못하고 서로의 생각대로 해버립니다. 가정의 평화는 온데 간데 사라집니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다가 오히려 자녀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줍니다. 부모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돈을 많이 들여서 유학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봉사와 섬김을 열심히 하는 귀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원망과 불평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원망과 불평으로 하지 않도록 칭찬과 격려를 해드려야 합니다. 방송실에서 봉사하는 우리 청년들, 성가대와 찬양팀과 교사로 애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토요일마다 나와서 누가 함께 하든지 않든지 열심히 예배당을 청소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원망과 불평이 생기지 않도록 자주 칭찬과 격려를 해드리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마리아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장례를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향유옥합을 깨뜨려서 예수께 붓고 머리털로 닦는 사랑과 헌신의 여인이었습니다. 그 녀는 자신의 섬김과 사랑을 통해서 예수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했습니다. 마리아가 의도를 가지고 했든지 아니든지, 그 행동으로 예수께서는 이해받고 공감 받고 위로받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니까 위로가 필요 없나요? 예수께서는 격려도 필요 없나요? 이해받고 공감 받지 않으셔도 될까요? 아닙니다. 예수께도 위로와 격려와 칭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너무 감사해요” “예수님은 우리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세요”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소망이 생겼어요” “예수님 때문에 살아갈 힘이 나요” 그것이 바로 찬양과 경배입니다.
아버지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 밤낮으로 일하시고 고생하시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어머니 저를 낳으시고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자녀들이 부모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는 부모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편지를 꼭 간직해서 읽고 또 읽습니다. 나도 딸 하주가 써 준 편지를 책상 밑에 깔아놓고 보고 또 봅니다. 포스트잇에 써준 짧은 편지가 책상 앞에 계속 붙어있습니다. 떼지 않기도 하지만, 하주가 떼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부서장이나 책임 맡은 분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애쓰고 계십니다” “부장님이 계셔서 힘이 납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맡겨진 일들을 담임목사의 마음으로 해서 교회 공동체가 든든해져서 칭찬받을 만합니다. 담임목사인 나도 성도들이 인사치레로라도 “은혜 받았습니다” “우리 목사님 목회하시느라 수고 많으세요”하면 격려가 많이 됩니다. 때로는 말없이 정성으로 교역자들을 위해 뭐라도 챙겨주시는 마음에 감사하고 힘이 납니다. 우리 계속 그렇게 서로 칭찬하며 격려하며 위로하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