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욕심 부리면서 살고 싶나요, 아니면 베풀면서 살고 싶나요? 화내면서 살고 싶나요, 잘 참으면서 살고 싶나요? 우울하게 살고 싶나요, 기뻐하면서 살고 싶나요? 갈등 속에서 살고 싶나요, 화목 하면서 살고 싶나요? 인색하게 살고 싶나요, 자비를 베풀면서 살고 싶나요? 미워하면서 살고 싶나요, 사랑하면서 살고 싶나요? 나는 죄 짓지 않으면서 선한 말과 행동 하면서, 섬기고 사랑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욕심과 정욕, 즉 죄의 본성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죄악이 근절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목석같은 사람들,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고 어떤 욕망이나 육체의 욕구도 절대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욕심과 죄 앞에서 내적인 갈등이 때로는 격렬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요? 공부, 독서, 음악 감상, 좋은 강의 듣기, 죄 짓지 않기로 결심하기 등이 물론 필요하고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며 필수적인 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욕심 부리며 살지 않는다는 명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따라 행하면 되는데 왜 우리 안에서 그렇게도 자주 갈등과 내적인 싸움이 있는 것인가요? 사랑하고 싶은데 잘 안 되고, 속에서는 용서하고 싶지 않고, 용납하고 싶지 않는 마음이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를 믿는 우리 안에서 왜 이런 갈등과 내적 싸움이 있는 것일까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7~21) 우리 안에 성령과 육체의 소욕, 즉 죄의 본성이 서로 대적하며 싸운다고 말씀합니다. 우선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내적인 갈등과 싸움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도덕적 갈등이 있지만 그렇게 격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적대 관계 속의 두 본성인 성령과 육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육체의 본성은 점차적으로 정복되어질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완전정복은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계시지만 믿는 자도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죄에게 종노릇하게 됩니다.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사단에 속고 유혹을 당해서 죄를 범하게 됩니다. 육체의 욕심을 내버려두면 세상에 휩쓸려 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죄의 본성이 있는 존재이므로 죄에 깊이 빠지고, 중독에까지 잠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공략해서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말할 수 없는 허무, 허탈, 무력함, 죄책감을 느끼고 실망, 좌절, 낙심하게 됩니다. 육체를 따라 행하면 성도들은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죄악에 빠져들지 말고 빨리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용서를 구하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길 수 있게 하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계속적으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성화시키며, 성령만이 우리 육체의 욕심을 대적하고 진압할 수 있으며, 우리 삶에서 의의 열매가 자라게 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갈5:18)는 수동태이며, “성령으로 행하는 것”(갈5:25)은 능동태입니다. 즉,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지만, 행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는 굴복하고 복종하며,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은 안내자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의 반응이 더해져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가 성령으로 살며 성령으로 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를 거스르며, 세상을 이기며, 어려움을 극복하며, 죄를 피하고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