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전에 출애굽기를 읽다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며칠 전에 읽었는데 똑같은 데를 다시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어, 이상하네, 분명히 읽었는데, 내가 성경을 잘못 폈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인즉슨 출25장의 내용과 출37장의 내용이 똑같았습니다. 알고 보니까 앞에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언약궤의 설계도를 설명한 것이라면, 뒤에 내용은 모세가 하나님의 설계도 그대로 제작한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치수와 제작 방법, 재료, 모양 등을 다 일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포함해서 떡상, 촛대, 널판, 받침대, 휘장, 문, 제단 등과 같은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장의 옷에 대해서도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신 그 모양, 치수, 재료, 방법 그대로 모세는 만들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마음대로 더 좋게, 더 크게, 더 멋지게 만들지 않고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첨가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궤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있었던 성막의 기구들 중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모세와 만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정확하게 만들어진 그 언약궤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시겠다는 것입니다. 만나셔서 하나님이 행하실 모든 일을 모세에게 이르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언약궤, 성소, 크게는 성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는 우리에게는 어디를 의미할까요? 물론 언약궤나 성막은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만난다는 의미이며 또한 '“우리가 순종하는 그곳에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는 거기서, 그 자리에서 만나주십니다.
만약 모세가 자기 생각, 방법대로 언약궤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은 거기서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만들라고 하시든지, 만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 성경에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말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중에 하나가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후에 더욱 견고해진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순종함으로 어떤 징조도 없던 상황에서 말씀만 믿고 방주를 120년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가족들과 동물들을 방주에 들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엄청난 복을 누렸습니다.
성경에는 순종과 불순종의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약궤와 관련해서 순종하지 못한 사건이 있습니다. 언약궤 네 모퉁이에는 금으로 고리 네 개를 만들어서 달았고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네 개의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었습니다. 언약궤를 옮길 때는 반드시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그대로 레위인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모세가 언약궤를 만든 지 약 5백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다가 언약궤를 빼앗겼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땅에서 이변이 속출하면서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있던 성막으로는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곳에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후에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역사적이고 거룩한 위업을 계획했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면서 언약궤 옮기는 거룩한 위업을 웅장하고, 화려하고, 멋지게 행했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사람들은 소 수레를 준비하고 두 사람이 소 수레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수레를 몰던 소가 곡식 타작하는 곳에 이르러서 타작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소가 뛰니까 뒤에 끌던 수레도 흔들거리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려고 합니다. 그 순간에 소를 몰던 웃사라고 하는 사람이 손으로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웃사를 그 자리에서 죽이십니다. 하나님도 너무하시다 싶습니다. 웃사가 거룩한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붙잡은 것인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죽이시다니요! 다윗왕은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길 수 없었습니다. 오벳에돔이라고 하는 집에 머물게 했고 하나님은 오벳에돔의 집에 큰 복을 주셨습니다.
웃사는 언약궤를 옮기는 책임자로서 분명히 하나님의 방법을 알아야 했습니다. 아니 그 방법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언약궤를 옮길 때는 반드시 궤를 체에 메어서 옮겨야 했지만 웃사는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했고 편하고 빠른 방법을 택했고, 그로인해서 끔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웃사를 치셨고,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만들어진 언약궤와 성막에서,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2절)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만나서 하나님은 보이시고 명령할 모든 일을 이르셔서 선하게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그곳에 오셔서 복주시며, 말씀을 주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남자들을 어디서 만나실까요? 아내를 사랑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직장 안에서도 순종하는 그곳에서 만나주시며 복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자 분들은 어디에서 만나주실까요? 남편에게 순종하는 그곳에서 만나주십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순종하는 거기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 만나고 싶나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모래 주머니가 달린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에 모래 주머니를 얼마 정도 내던져야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요?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더 높이 올라갑니다. 육신의 문제와 세상과 악에 속한 것들을 더 많이 떨쳐 버릴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더 높이, 더 가까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사1:19)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라”(욥36:11) 당신이 순종하는 ‘거기서’ 하나님은 만나주시고 인도하시며 복 주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