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는 목사님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공부를 했던 70년대 대학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학교 교수님이 예쁘게 봐주셔서 밥도 사주시고 공부하도록 장학금도 챙겨주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결혼할 때에 방 얻을 돈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1백 만 원을 전세보증금으로 쓸 수 있게 그냥 빌려주셨다는 겁니다. 그 당시 대학 선교단체 간사로 사역하던 가난한 목사님은 교수님께서 많은 은혜를 베푸신 것에 감사하면서 어떻게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지 여쭈었다고 합니다. 교수님의 대답은 “자네가 그것을 은혜라고 여긴다면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아들도 미국에 유학 가서 공부할 때에 대학 교수님께 역시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의 아들도 어떻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교수님도 은혜라고 여긴다면 다른 사람에게 갚으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기업 분배를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는 일하지 않았고 성소의 일만 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에게 기업은 없었고 하나님이 기업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살아갈 집과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레위지파에게도 터전을 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래서 땅 분배를 마쳤을 때, 레위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살아갈 터전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이스라엘 사람들이 분열될 수도 있었습니다. 성읍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서로 대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모든 지파들이 제비를 뽑아서 나누었기 때문에 레위 지파에게 살아갈 터전을 주려면 그들의 땅에서 일부를 주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자기의 기업에서 레위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공동체를 살리는 매우 올바르고 선한 선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누고 함께하는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성경에서는 “주라, 나누라, 함께 하라, 형제와 연합하라”는 말씀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편) “반드시 네 손을 그(형제)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5:8~10)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6:35) 어렸을 때부터 모든 율법을 다 잘 지켰다고 하면서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눅18:22) 그 말을 들은 부자 청년은 고민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면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안 주면 갚아 주실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서론에 언급한 것처럼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좋은 장학제도나 인재 양성 제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앞서가는 선진국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최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원조를 늘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잘 되는 매우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 교회, 우리 교회가 사람을 세우고, 구제, 선교에 힘을 써야 복을 받습니다. 우리만을 위해서 쓰는 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것이며 복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터전을 줄 때에 자기 기업에서 주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나눌 때는 나의 헌신과 수고가 따릅니다. 내 몫이 희생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주께서 갚아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아둘람 공동체를 아십니까?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도망 다닐 때에 다윗은 유대광야에서 숨어서 십 수 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특히 아둘람이라는 큰 동굴 속에서 지냈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지낼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찾아왔습니다. 환난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찾아왔습니다. 사실 다윗도 환난당하고 원통한데 누구를 품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사람을 품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것이 큰 자산과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둘람 공동체가 되어서 사람들이 와서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나와 우리가 아둘람 굴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픈 분을 위해서 어떤 분은 죽, 김치 등 먹을 것을 가져다 주신다고 합니다. 주방 봉사 하는데 다른 순에서 할 차례인데도 가서 돕는 분도 있습니다. 남아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몫을 주는 것입니다. 은혜 받으셨나요? 받은 은혜를 나누어 주세요. 누군가가 은혜를 나누는 당신에게 “어떻게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이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세요”라고 말해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