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뉴스를 보면 날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2018년에도 끔찍하고 안타깝고 황망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올 해는 ‘미투’라는 이슈로 사회가 많은 굴곡과 변화를 맞은 듯합니다. 이외에도 피시방 살인사건, 혐오살인과 폭행, 화재, 파업, 중독사고, 교통사고 등이 계속 되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고 푸근한 뉴스들로 세상이 밝아지려나 고대해봅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스와 언론매체나 포털사이트는 자극적인 보도를 하는 특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크고 작은 기쁘고 감동적인 일들이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악합니다.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죄성이 있습니다. 모든 불의, 악행, 탐욕, 악독, 시기, 살인, 다툼, 속임, 사기, 거짓, 수군거림, 험담,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거만, 교만, 자랑, 악을 계획, 부모 거역, 비양심, 약속 파기, 불친절, 동정심 없는 것 등등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잘 한다고 두둔할 정도입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엡4:17~19)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편지를 써서 보냈던 에베소 지역이 상업이 번성한 항구도시이며, 아데미 신전과 여러 신전들이 있던 우상숭배 중심지였습니다. 세상 풍조와 죄악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총명이 어두워졌습니다. 도덕과 윤리와 진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주관적인 생각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자기가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와 악행이 얼마나 더럽고 잘못된 것인지 모릅니다. 세상은 부끄러워 할 줄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방탕과 악한 욕심으로 내버려두면서 맘대로 삽니다. “내가 하겠다는데 왜 간섭하느냐?”고 합니다. “그냥 내버려둬!”라고 합니다. “너나 잘 해”라고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을 묘사했는데, 이것이 과거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모습이라고 했지만, 요즘도 불쑥불쑥 이러고 있지 않은가요? 에베소 성도들이 현실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현실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죄의 본성대로 살게 되는 것이 우리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의 속박에서 해방을 받은 자들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괴로워합니다. “실제 생활에서 거룩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이런 나를 거룩하다고 할 수 있나요?” “아직도 내 안에 악이 남아서 나를 괴롭히는데 이것은 왜 그런가요?”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 것인가요?” “내가 정말 예수를 믿는 것인지요?”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인지요?”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엡4:20~21)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분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허망하고 어리석고 방탕한 것을 결코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인 허탄한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장성한 자로 자라가길 원하십니다. 당신이 장성한 자로 자라가고 있다면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성장하고 있지 않다면, 여전히 허망하고 어리석고 방탕한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것을 등한시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돈 잘 버는 것, 좋은 집에 사는 것, 취업하는 것, 성공하는 것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잘 배우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에는 돈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집을 사서 이사할 때 어떻게 합니까? 최소한 몇 군데 부동산을 다닙니다. 그리고 이곳저곳 집을 많이 봅니다. 몇 날을 고민하고 살펴봅니다. 역세권, 주변 상권, 학군과 학교, 출퇴근 거리, 문화적 혜택, 그리고 나중에 집값이 얼마나 올라갈지 투자적인 면까지 살핍니다. 결혼을 하면 부부관계가 자동적으로 잘 되나요? 자녀 양육, 교육, 진학 지도가 너무나도 편하게 잘 되나요? 아닙니다. 역시 배워야 합니다. 때로는 부부가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갈등하고, 대립하고, 해결하고, 배우면서 부부 관계가 친밀해집니다. 자녀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신앙생활이 자동으로 될까요? 예수님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이 자동으로 될까요? 운동을 제대로 하려고해도 몇 년은 배워야 합니다. 육체적인 운동도 시간을 들여서 배우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적 운동인 신앙생활은 자동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배우는 데는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이삼십 년을 신앙생활 해도 아직도 어린아이로 있다면, 왜 그럴까요?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의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 안에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이 놀라운 예수를 배워갔으면 합니다. 예수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2019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풍성한 보화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광염교회의 2019년은 ‘예수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해’가 되자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고 권면합니다. 옛사람은 욕심, 잘못된 습관, 자기 생각, 옛 말과 태도와 언어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으로 예수를 입어야 합니다. 의와 진리로 새 사람을 입으며 예수를 배워가야 합니다. 새사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에 맞는 옷차림을 합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는 그 예식에 맞게 옷을 입습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는 수감복을 입습니다. 그런데 죄수가 감옥에서 풀려나서 자유인이 되면 수감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습니다. 군인이 제대하면 민간인이 되어서 평복을 입습니다. 새창조에 의해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습니다. 옛날 기준을 버리고 새 기준을 선택한 것입니다. 죄수복이 편하다고 평상시에 죄수복을 입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제대했으면 군복은 벗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썩어져가는 구습을 벗게 하소서”라는 간절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관계 맺는 것이 어렵다면 내 안에 어떤 구습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삶에 평안이 없다면 내 안에 어떤 구습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말에 원망, 불평, 수군 수군거림, 남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나쁜 말하는 것이 있다면 “주여 깨닫게 하소서” “주여 배우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새 사람을 입은 자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입은 새사람은 우리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재창조하실 때, 우리는 그 분의 하시는 일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었으므로, 그것을 미워하여 거기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사람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환영하면서 날마다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즉,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재창조와 우리의 회개는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 예수님을 배워야 진정한 쉼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배워야 참 평안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배워야 진짜 행복이 시작됩니다.
2019년 한 해는 예수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소망합니다. 새해에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옷 입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복을 누리길 기대합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 습관, 나쁜 버릇, 못된 마음, 교만, 이기심을 벗어버리고 예수로 날마다 옷 입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기쁨을 누리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합니다. 예수를 믿는 기쁨과 맛을 알아가길 바랍니다. 예수를 날마다 닮아가는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 예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며, 예수의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길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