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만남을 앞두고 기대되는 마음도 있지만 두렵고 초조한 마음도 갖습니다. 나는 부목사로 14년을 사역하다가 2013년 7월에 교회 개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 아세요? 기대와 흥분은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은 없이 평안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고 인도하셨으니 하나님이 다 하실 거야”라는 마음이 나를 지배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2013년 7월13일 설립예배에는 수백 명이 축하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관건은 다음날 주일 첫 예배였습니다. 어느 정도나 올지? 누가 올지? 거의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근심과 염려를 한다고 오는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매주 등록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그런데 등록했던 성도들이 더러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뭘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근심이 생겼습니다. 초조하고 불안하면서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제대로 안 하면 모였던 성도들이 다 흩어질 수 있다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초조와 불안한 마음으로 있다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누가 했냐, 네가 했냐?”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뇨, 하나님이 하셨죠”했습니다. “그럼 맡겨라, 네가 뭘 하겠다고 그러느냐?”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기겠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다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과 권력과 인기와 명성이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은 그런 것들이 평안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진실입니다. 오히려 돈과 권력과 인기와 명성에 종노릇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평안’이 아니라 ‘편리’ 혹은 ‘편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 있으면 비행기를 편안하게 비즈니스석, 퍼스트 클래스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돈 있으면 편리하게 호텔, 공항에서 발렛 파킹하고 편안한 스위트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힘과 권력이 있으면 측근에 머리 좋은 사람, 일 잘 하는 사람을 두고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다 편리함과 편안함을 평안으로 알고 있다가 자칫 어려움을 당합니다. 돈과 권력과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다가 인생이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인기와 명성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다가 큰 수모를 당할 수 있습니다. 편리함과 편안함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더 원활하고 힘을 내서 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도 사용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 힘, 인기를 왜 원하는 것일까요?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와 들판의 백합화와 들풀들도 하나님이 먹이고 기르고 입히는데 하물며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걱정하느냐고, 너희가 염려한다고 조금이라도 키를 키울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런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셨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때를 아시고, 얼마나 필요한지를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조절하시겠다고 하시며, 다스림을 받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스리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면 됩니다.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내어 드리고 우리는 그 다스림에 따르며 순종하면 됩니다. 그럼 평안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스스로 다 채울 수 없습니다. 사실 필요의 수치도 잘 모릅니다. 얼마나 있어야,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욕심과 탐욕으로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맡겨드리면 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근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때서야,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자녀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면 됩니다. 부모의 생각과 세상의 가치관으로 양육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므로 양육에 있어서도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이 시대에는 교육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해도 많은 전형들이 있습니다. 인문계, 외고, 과학고, 자사고, 어떤 특성화고를 가야 할까 고민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대학은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형들과 방법들이 있습니다. 물론 고민과 생각과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서로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살면 자녀는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신 은사와 꿈을 알게 하시고 보게 하셔서 아름다운 열매를 얻게 하십니다.
집 사고 파는 것을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다가 10년간 대출 빚만 갚으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싼 대출 이자만 내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결국 다시 팔고 손해만 보기도 합니다. 사업장도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도록 하려면 자신이 빠져야 합니다. 나 자신이 안 빠지려고 하니까 계속 힘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결정권자입니다, 결정대로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이심을 삶으로 고백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할까요, 말까요?” “갈까요, 말까요?” “살까요, 말까요?”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샬롬(!/lv)입니다. 돈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합격과 불합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