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출산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임산부는 다시는 임신하지 않겠다는 말을 합니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출산하고 얼마 지나면 그 두려움은 많이 사라집니다. 해산의 고통보다는 아이를 통해서 얻는 기쁨과 행복이 훨씬 몇 갑절로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므로 당신이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지만 보혜사 성령이 오시려면 예수님 죽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이를 안는 기쁨이 있기 전에 먼저 출산이라는 난관을 통과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6:19~22)
예수의 고난과 죽음 앞에서 제자들은 슬퍼하고 애통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하나라고 주장하던 예수가 죽었으니 세상은 기뻐할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를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고 죽였으니, 승리했다고 여기며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근심할 것이지만 금방 기쁨으로 변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출산한 엄마가 아이를 낳은 기쁨 때문에 출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제자들도 찾아올 기쁨, 특별히 성령으로 인해서 고통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두 눈으로 보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영광스런 승천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오심으로 엄청난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의 태동이라는 하나님의 꿈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냥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누리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직접 기적을 행할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머거리와 소경이 치료되고, 심지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행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현장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 전파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뒤에 찾아오는 기쁨이 분명히 있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후에 오는 취업이나 진학이라는 열매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기쁨의 날이 오게 됩니다. 새벽부터 삶의 현장에 나가서 땅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는 수고에 아름다운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무대에 연극을 올리기까지 많은 수고와 부침과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을 올린 후에 찾아오는 더 큰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수술하기 전까지 두렵고 떨리고 고통스럽지만, 수술 후에 찾아오는 안도의 평안이 있습니다. 사랑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 있었지만 사랑하면 평안합니다. 순종하기까지 어려웠지만, 순종 후에 오는 영적 유익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힘들었던 아내를 사랑한 후에, 순종하기 어려웠던 남편에게 순종한 후에, 오는 유익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순종하는 것이 더 쉽다’는 고백을 하시더군요. 순종해보니까 그 맛을 아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고 버티면서 사는 것이 더 어려웠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성령의 감동에 반응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성령의 감동에 순종할 때에 얻게 되는 아름다운 열매가 너무나도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시는 놀라운 열매가 큽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이 성취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가 있다는 것은 배워서 알겠는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소욕을 거슬려 살려면 불안과 걱정과 초조한 마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계산기로 두드려보면 엄청난 손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과 시각으로 보면 자신만 바보 같이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설 때에 경험하는 엄청난 기쁨이 있습니다. 마치 임산부가 해산하기 전에 느끼는 불안과 초조가 있지만, 출산한 후에 그 사람은 기쁨을 얻게 될 것이며, 그 기쁨을 빼앗을 수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혼 생활이 때로는 다툼과 갈등을 겪지만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라는 믿음이 있을 때에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회 개척과 목회가 쉽지 않은 상황들이 벌어져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에 믿음과 소망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고 하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