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나요?’ 이런 질문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낼 수도 있고, 별 일이 아닌 것 같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구하면 용서할 수도 있겠지요.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사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에 운전하다가 반대편에서 오던 차에서 나를 향해서 ‘X새끼’하면서 가는데 뭐라고 항변도 못하고 지나가버려서 아직도 그 일이 떠오릅니다. 내 마음 속에 그 운전자에 대해서 용서가 안 되었든지 기분이 꽤 좋지 않았던 기억 때문에 지워지지 않았나 봅니다. 어쨌든 용서는 쉬운 주제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에 의해서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해질 때에 골로새라는 지역에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에 의해서 예수를 믿었고 바울의 동역자로서 지역 사회에서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예배 장소로 내놓을 정도로 신실하며 상당한 재력가였습니다. 그 당시 예수를 믿어서 종교를 바꾸는 것이 로마제국과 지역 사람들에게 매우 달갑지 않게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집을 예배 장소로 내놓았다는 것은 환란과 핍박을 감수하겠다는 대단한 의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체국이 있어서 편지를 발송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의해서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는 바울의 심복 오네시모라는 사람을 통해서 전달되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오네시모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돌려보낸다고 말하면서 빌레몬 대신에 바울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오네시모가 좋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 일을 빌레몬에게 승낙을 받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온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대할 때에 자신을 대하듯이 영접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실 오네시모는 주인의 집에서 멀리 로마로 도망쳐 대도시에 묻혀 종의 삶이 아니라 자유를 추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재산까지도 훔쳐서 도망 나왔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오네시모는 빌레몬이 생각할 때는 배은망덕한 종이었으며 잡아서 응당한 심판을 받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당시 종이 주인의 집에서 도망쳤다든지 재산상의 피해를 입게 했으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빌레몬에게 바울의 편지를 전하려고 가는 오네시모도 매우 두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잡혀서 어떤 봉변과 처참한 결과를 맞을 수 있으며 법적으로도 전혀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할 것은 요청합니다. 그가 잘못한 것이나 빚진 것이 있거든 자신에게로 돌리라고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자신의 동역자로 삼게 해주는 결정을 해준다면 기쁘겠다고 말합니다. 빌레몬이 순종할 줄 확신하며 그 이상 행할 줄을 기대합니다. 바울은 아주 정중하고 지혜롭게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바울 자신의 동역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제 그 결정은 오롯이 빌레몬의 몫이 되었습니다.
빌레몬도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종이라는 녀석이 자신과 가정을 해롭게 하고 도망쳤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붙잡고 싶었겠습니까? 바울의 편지를 받게 된 빌레몬은 큰 딜레마에 빠지는 혼란이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를 잡아서 법에 넘겨 응당한 대가를 받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고, 욕먹을 짓도 아니고, 마땅히 할 수 있는 처사입니다. 빌레몬은 갈등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를 동역자로 여기면서 자신을 돕고 섬기는 사람으로 삼고 싶다는 바울의 요청을 거절해도 법적으로 전혀 거리낄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기로 결정합니다. 오네시모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지체라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바울을 돕고 섬길 수 있는 훌륭한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빌레몬은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예수를 믿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서로간의 불만과 원망이 있으면 소통하면서 풀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무조건적, 율법적, 강압적인 용서가 아니라 정직하고 친밀한 교제 안에서 용서이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도 사이에는 소통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소통과 신뢰 없이 무조건적인 용서와 덮어줌은 더 큰 어려움과 상처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을 풍성히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