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에 미국에서 1년을 살았었습니다. 딸 하주가 3살 때니까 딸에게는 거의 기억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하주는 자기는 미국에서 살았던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어디 어디를 갔었다고 하면 자기도 알고 뭘 했는지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아빠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엄마 아빠가 말해주어서 아는 것이죠. 가끔씩 그 당시에 찍었던 사진도 보여주고, 동영상을 보았기 때문에 어떤 곳에 갔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딸 하주는 부모의 말을 듣고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자기가 거기에 갔었다는 것을 알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들어가셨습니다.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곳이라서 예수님이 많이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왕의 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와서 청하였습니다. “우리 집에 내려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야 믿게 되고, 표적과 기사만 보기 원하는 부분을 꼬집어서 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왜 사람들은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할까요?
딸 하주가 부모의 말을 듣거나 사진을 보면서 믿는 것처럼, 사람은 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믿습니다. 역사적으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것을 믿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과 한산도대첩을 거두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연산군이 폭정을 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역사적인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실로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의 역사는 왜 믿지 못하는 것인가요?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이 500명이 훨씬 넘는데도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과학과 논리와 합리성을 내세우면서 믿기를 거부합니다. 그렇지만 과학과 논리와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진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비로운 우주와 인간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어떻게 과학으로 밝히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본다고 믿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에서는 사람의 완악함과 굳어진 마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시53:1~4)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1:28~32)
예수님께서는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못하는 세대를 향해서 탄식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둔해진,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세상을 향해서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못 자국에 손을 넣어보아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며칠이 지나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손을 보고 옆구리에 네 손을 넣어 보라고 하시며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건을 직접 본 사람들이 잘 믿을까요, 아니면 안 보고 듣기만 한 사람이 잘 믿을까요? 연구 결과를 보니까 보고 안 보고가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오히려 안 보았어도 분명한 말을 듣고 신뢰할 때 확실하게 믿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왕의 신하가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하셨습니다. 그 신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집으로 갔습니다. 사실 우리 누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질병, 사고, 수술, 계약, 합격과 당첨 발표 앞에서 믿음으로 견고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무지, 불신, 불안, 염려, 걱정으로 우리 자신의 연약한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못 믿는다고 정죄하거나 비방하거나 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만 믿고 가는 왕의 신하는 대단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삶에서도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안 믿으면 불안과 초조와 험악한 세월을 삽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며,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게 합니다. 믿음은 능력 있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게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장래를 보고 믿음으로 말하면 됩니다. “넌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거야” “넌 지혜롭고 행복할거야” 배우자를 보면서도 바라는 것들을 말해주면 됩니다. “우리는 더욱 친밀한 부부가 될거야” “우리는 행복한 부부가 될거야”라고 말해주세요. “나는 학업의 진보와 성장이 있을거야” “너는 승리할거야” “당신은 강건할거야”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거야”라고 믿음으로 말하면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믿음으로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