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사주와 팔자와 운세를 보려고 점집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이사나 개업 날짜를 택일하려고도 그렇게 합니다. ‘손 없는 날’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날을 피해서 오히려 이사 비용을 저렴하게 아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범사에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음을 믿기에 자신의 형편에 맞게 기도하면서 이사나 개업 날짜를 잡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런 고민을 합니다. 회사를 언제 옮겨야 하는지, 새로운 일을 어느 때에 시작해야 하는지 등등 하나님의 때를 구하면서 기도합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때를 의미하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오시기 약 몇 개월 전에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갈4:4)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무엘은 민족의 혼란기에 선지자이며 제사장이며 왕의 역할을 위해서 하나님의 때에 보내졌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삼상1:11)겠다는 기도는 하나님의 때에 딱 맞았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며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성모독적인 발언 때문에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경계와 미움을 받게 되었고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신변의 위협이 있어서 고향 근처인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와 예루살렘에서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예수의 친형제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더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 한다면 당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고 하면서 아직 예수의 친형제들도 예수를 믿지 못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유대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 앞에서 당신을 말하고 전해야 할 때가 있으며, 핍박과 수모와 고난을 받으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는 당신의 고난과 죽음의 때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고난과 죽음이 두려워서 라기보다는 아직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요7:6)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염두하고 있는 때, 즉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그 때가 아닌 것입니다. 아직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에는 이른 때였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 하나님이 행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때와는 상관없이 우리 때에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과 합리성과 상황을 가지고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해선 안 됩니다. 나의 때에 욕심을 부리면서 하나님의 때라고 우기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안 되었는데 자신이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내 방법이나 판단으로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우리는 아무 때나 상관없이 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무시했던 성경 속의 인물이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했지만 스스로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때를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믿음의 사람이었던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먹을 것을 찾아서 애굽으로 내려갔으며 그곳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일을 벌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무시했던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지요.
우리는 생각 없이, 기도도 없이, 말씀도 없이 아무 때에나 해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해버릴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이나 힘든 관계의 회피가 이직의 이유라면 하나님의 때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가 싸움을 걸어올 때에 바로 싸우고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의 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게으름으로 놓쳐버리고 있다면 하나님의 때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내려놓고 포기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 자신의 때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스어로 시간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집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한다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냥 시간을 보내면서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때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느냐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내 때를 사는 것은 내 생각, 욕심, 정욕, 본성대로 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때를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이루면서 건강하고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사실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크로노스를 잘 살아야 합니다. 크로노스의 때에 잘 준비하는 사람이 카이로스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목자로서 양무리에 충성하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냈을 때에 물매로 골리앗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던 다윗이나 모세처럼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가정총무로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았을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요셉은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때를 나의 때처럼 살지 말고, 나의 때도 하나님의 때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더디다고, 끝났다고 낙심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크로노스의 시간에 개입하셔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