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에는 도피성이란 제도가 있었습니다.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자가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에 도피성으로 피하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한이나 미움이 있어서 일부러 살인한 자가 도피성으로 피하면 그는 잡아다가 넘겨 죽이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제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으라는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을 율법으로 주셨습니다.
동해보복법은 보복을 장려하기 위한 율법이 아니라, 인간의 악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정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한 대 맞으면 몇 대 때려주고 싶죠? 개인적인 감정에 따른 법집행을 하게 되면 분명히 죄 값 이상의 복수가 실현될 것이므로, 동일한 상해나 배상의 원칙을 적용한 처벌법입니다. 그 이상으로 갚아주면 또 다른 보복이 일어날 수 있고 끝없는 피의 악순환이 진행될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천국 백성들이라면, 율법이 정한 최소한의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율법에 만족하지 말고,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는 사랑과 용서와 인내의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 말씀을 가장 정확히 실현한 것입니다.
서로 상처주고 상해하고 괴롭게 하는 것은 죄로 인해서 왔습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괴로운 일들도 죄로 인해서 왔습니다. 가난, 질병, 고통, 전쟁, 죽음 등 이 모든 것들이 죄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당하는 모든 슬픔의 근원이자 뿌리가 바로 죄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서 사실 망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죽음 외에는 없습니다. 이미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해독할 수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죽으면 됩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오해는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지만,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사망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이며,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죄도 없으신 분이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 외에는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어주신 분이 없습니다. 마호멧, 공자, 맹자, 부처도 자신의 죄 값으로 죽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를 주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제하기 위해서는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인으로 여겨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었어도 날마다 죄를 짓습니다. 그 죄는 어떻게 용서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까지 미칩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때그때 범하는 죄는 하나님에게 인정하면서 고백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몇 번까지 할 수 있습니까? 일흔 번에 일곱 번씩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 것을 보상해줄 수 있는 것은 보상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발로 밟아서 깊은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사죄의 능력과 속죄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우리의 선행이나 도덕, 윤리적인 삶과 용서가 교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때그때 회개하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는 동안 우리는 천국을 못 누립니다. 지옥 맛을 보게 됩니다. 살인이라는 죄를 범한 사람이 15년, 20년을 붙잡히지 않고 몰래 산다면 두 다리 뻗고 살겠습니까? 오히려 그 죄 값을 받을 때 맘은 편할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원수로 지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우린 죄 짓고 살 수 없습니다. 고백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예수를 믿고 회개했으면 자유하면 됩니다. 의인이므로 의인을 누려야 합니다.
상대방의 죄도 없애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도피성으로 피신했으면 인정하고 용서하십시오. 예수님께 고백하고 인정했으면 용서해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죄는 동해보복법이 아니라 덮어주면 없어집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받아야 해” “톡톡히 쓴맛을 봐야해” “나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데, 저 사람도 당해봐야 해” “저 인간은 안 만날 거야” 그러나 이것은 세상 논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물론 용서만 해주고, 덮어만 주고, 사랑만 해주면 다 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폴란드의 사제 ‘예르지 포피예루스코’는 공산당에 맞서서 자유노조운동을 이끌다가 비밀경찰에 의해서 살해되었습니다. 바웬사와 25만 명의 시민들이 장례식에서 ‘용서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비밀경찰본수를 행진했다고 합니다. 폴란드의 공산 정권은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해주면 됩니다. 용서해주고, 덮어주고, 사랑해주면 됩니다. 끝까지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용납해주면 됩니다. 우리가 안 해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못해서 그렇습니다.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하라고 하면서 못 한다고 하면 어찌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랑만큼만, 하나님께 받은 은혜만큼만 하면 됩니다. 내 사랑이 작은데요, 어떻게 합니까? 그만큼만 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치수를 키워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받은 은혜만큼 하면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처음부터 십자가를 매겠다고 안 했습니다. “날 무시한다, 날 무엇으로 아느냐, 상처받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보배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상처 받아서 교회 안 나가는 분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어떤 사람에게, 형제에게 상처 받아서 아직도 관계가 풀리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이해되고 안쓰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나라도 대신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 그 사건 때문에 아직까지 왜 당신이 묶여 지내야 합니까? 왜 당신이 감옥 같은 그 과거에 지배받으며 살아야 합니까? 묶었던 곳을 풀어주세요,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질 것입니다.
악을 제하십시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악이 제하여졌습니다. 이미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습니다. 안전과 화평과 사랑과 은혜를 누리십시오. 도피성 밖에 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 당신이 범한 죄는 하나님께 인정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는 죄을 제거한 자이므로 의인됨을 누리면 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