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는 몸의 종양을 잘라내야 합니다. 몸에 칼을 대는 것이 고통스럽고 아프다고 종양을 제거하지 않으면 몸에 암이 퍼져서 죽습니다. 온 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종양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전염병균을 제거하지 않으면 더 처참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호흡이 있는 모든 자들은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들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을까요? 왜 무고한 생명을 다 죽이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력하게 가나안의 진멸을 말씀하신 이유는 이렇습니다.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민33:55) 그들과 화평하게 되면 진짜 평화가 아닙니다. 고통과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거민들을 진멸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거민들을 다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그들의 미혹에 빠져서 우상숭배를 범하게 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진멸하는 것은 가나안 거민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닙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숭배한 자들을 형제일지라도 모세와 레위인들이 진멸했습니다. 노아 시대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성의 진멸도 마찬가집니다. 예일대학교 신학과 미로슬라프 볼프 교수는 “하나님이 불의와 거짓에 분노하지 않고 폭력을 영원히 끝장내지 않는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예배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질 때에 화평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특히 핍박, 환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화평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라고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을 바로 잡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 꼭 전쟁이 필요하고 가나안 거민들이 진멸되어야 하나요? 적극적인 개혁과 끝없는 용서로 그들과 함께 평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죄악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화평을 진정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죄악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죄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로 죄악을 제거하신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을 제거하신 것처럼 전염병과 악성종양을 잘라내야 합니다. 죄악을 제거하려면 아픔과 죽음을 겪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화평을 얻기 위해서는 가나안 거민들을 진멸해야하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평이 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때, 하나님과 사람은 화평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그 관계가 깨졌습니다.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다시 화평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가나안 거민들이 죽은 것처럼 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얻기 위해서는 누가 죽어야 합니까? 사람이 죽어야 맞습니다. 화평의 관계를 깨뜨려버린 죄악된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사람이 고통과 아픔과 죽음을 겪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천번 만번 따져도 사람이 진멸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낮아지심과 아버지와 영적인 단절이라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당신이 친히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화평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사자인 우리가 죽고 진멸되어야 했지만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화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은 화평이듯이, 우리 집안에도 하나님의 뜻은 화평입니다. 그런데 화평이 이루어지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합니다. 누가 죽어야 합니까? 아내와 남편 중에서 누가 죽어야 합니까? 그런데 서로 죽으라고 합니다. 당신이 변해야 한다고 합니다. 네가 바뀌어야 가정이 화평하게 된다고 소리치고 우깁니다. 서로 바뀌라고 하는 것은 본인은 죽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화평이 임합니다. “내가 죽겠습니다”하고 죽으면 됩니다. 부모와 자식 중에서 누가 죽어야 합니까? 내가 죽으면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누가 죽어야 합니까? 부서, 기관, 성가대, 전도대에서 누가 죽어야 합니까? 내가 죽으면 공동체는 삽니다. 직장 속에서 누가 죽어야 합니까? 내가 죽으면 됩니다. 죽어야 화평을 이룹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