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좋은 일들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합격, 취업, 승진, 결혼, 출산, 개업, 매출 상승, 투자 성공과 같이 즐겁고 흥분되는 일을 기대합니다. 물론 소소한 일로 인해서 기뻐하며 ‘소확행’을 사는 것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에게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기뻤던 일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한두 가지는 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기뻤던 일도 있을 터고, 기대했던 것이 잘 되어서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뻤던 날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두 사람을 넘어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엄청난 기쁜 일이 이 천년 전에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건은 여전히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속한 유대 지역의 빈들에서 어두운 밤에 목자들이 자기들의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밤에 바깥에서 양떼를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두움과 추위와 사나운 맹수들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두려움과 무서움과도 싸워야하기에 목자들의 수고는 진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목자들에게 영광이 비추면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2:8~10) 천사가 전해 준 말 중에서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란 무엇일까요? 정말 모든 백성에게 실제적이며 영향력이 있는 소식이어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온 백성들을 살맛나게 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소식이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기쁨의 소식이란 무엇일까요?
오늘날 너무나도 세속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고통과 공허와 허무를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과 인기와 권력과 화려한 스폿 라이트(spot light)를 받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 술과 마약과 쾌락으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멋지고 즐거운 인생을 꿈꾸면서 살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과 박탈감과 자괴감으로 지내기도 합니다. 설사 인생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이후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을까요? 그 두려움의 뿌리는 죽음입니다.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인간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음의 공포가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두려움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두려움을 이겨보려고 혹은 잊기 위해서 돈과 인기와 권력과 탐욕과 세속적인 성공 등의 다양한 것들을 쫓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로는 인간 심연에 있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고통과 두려움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사건이 바로 인류 최고의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지극히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구원자이며 심판주이며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세상을 정복하고 평정하여 구원한 것이 아니라 초라하고 무기력한 목수의 아들로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빈들의 약하고 소외된 목자들의 찬송을 받았으며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를 받았을 뿐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2:11~12) 그분은 낮고 낮은 모습으로 가장 겸손하게 오셔서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자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성탄을 기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