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예수 공동체’라고 고백하지만, 공동체에는 좋은 일도 있지만 언제나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덮여진 것이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갈등을 모른 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에 상처나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보다는 회복하는 노력을 원하십니다. 정말 치명적인 죄가 아니라면 회복될 수 있는 것이 관계입니다. 우리의 삶은 늘 배워야 하는데, 특히 화목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5:18)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화평을 사랑하는 자, 평화로운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하시지 않고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갈등의 해결과 회복을 위해서 적극 노력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성숙도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화평하게 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 회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가장 먼저 하나님께 이야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1~3) 싸움은 정욕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화목을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거나,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갈등을 사람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거나, 우리를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노, 상처, 불안 등의 모든 감정에 대해 놀라지 않으시고 거절하지도 않으십니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께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업무와 관계의 고민, 사장으로서 서운함과 염려, 결혼 전과는 달라진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고민, 친구 관계, 연예, 진로에 대한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상황 속에서 우선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도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관계든 사람이 채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것도 있다. 대부분의 갈등이 기도 부족으로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먼저 소통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 너무 중요하므로, 예배보다 우선순위에 두라고 명령하실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관계가 왜곡되고 깨어지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화목의 자리를 꼭 마련해야 합니다. 미루거나 핑계를 대거나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가능한 속도를 맞추어서 얼굴을 맞대고 만날 계획을 잡아야 합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는 배우자와 끄집어내려는 상대 배우자와의 속도 차이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미루면 미룰수록 분노만 깊어지고 더 심각하게 된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으며, 그냥 지나가면 상처는 곪습니다. 만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과 최상의 상태에서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우리를 비참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도를 막아버립니다.
세 번째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해야 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4) ‘돌아보다(헬)skopos’라는 단어는 망원경(telescope)과 현미경(microscope)의 어원으로 매우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사실을 알아봐주어야 하지만, 진짜 깊은 관심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해결해주려고 하기 보다는 우선 공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회사에서 사장님한테 엉뚱한 잔소리 들었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한다면 우선 먼저 그 마음을 읽어주어야 합니다. ‘속상하지’ ‘서운했겠네’ ‘당신이 그렇게 서운해하니 나도 서운하네’. 배우자가 해물탕 먹고 싶다고 한다면 ‘지금 끓여주면 좋긴 할텐데, 어떻게 하지 지금은 재료가 없어서 내일은 어때?’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왕 끓여주려면 ‘맨날 자기만 먹고 싶은 것만 있지 지긋지긋해’가 아니라 ‘자기가 먹자고 하니까 나도 먹고 싶어지네, 자기가 맛있게 먹으면 난 좋아’라고 하면 어떨까요?
처음부터 그 사람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로 충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면 됩니다. 방어하지 않고 감정의 짐을 덜게 해주어야 합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한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좋습니다. 감정이 진리이거나 논리적이지는 못하고 지극히 주관적이며 비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감정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입니다. 우선 그 사람의 가진 감정을 공감하면서 그의 입장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관계를 깨뜨리려는 사단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갈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해결보다 화목이 중요합니다. 해결보다 화목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12:18) 화목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양보하거나, 상대방에게 맞추기도 하며, 배려와 호의를 보이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갈등 회복의 목표는 일의 결과물이나 해결보다는 화목이어야 합니다. 해결은 일이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화목은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해도 관계는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획일성이나 독단적이 아닌 연합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 같은 관점이 아니어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깨어진 관계들은 회복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회복해서 화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먼저 소통을 시도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며, 해결보다 화목에 초점을 맞추면서 세워가는 우리광염 공동체 되길 소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