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기름이 다 떨어져 가면 주유소에 들러서 충전을 합니다. 교회가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다가 힘이 다 떨어지게 되면 교회에 와서 에너지를 충전 받게 됩니다. 교회는 주유소와 같습니다. 충전해서 다시 세상의 도로로 나가서 힘있게 달립니다. 만약 기름을 다 채운 후에 자동차가 주유소에서만 맴맴 돈다면 자동차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기름만 아깝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흩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은 흩어지기 위해서 모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굳건하게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흩어져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진 초대 교회 당시부터 성도들은 흩어졌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핍박을 피해서 어쩔 수 없이 흩어져야 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가 흩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이미 흩어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흩어져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흩어지지 않으면 고여서 썩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물을 받아들이지만 내보내기도하기에 생명력이 있는 풍부한 곳입니다. 많은 물고기들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해는 밖으로 물을 내보내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합니다. 그래서 사해는 죽은 물이 되었습니다. 보기에는 에메랄드처럼 빛이 나는 것 같지만 사해에는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는 죽은 호수가 되었습니다. “제게 요즘 기쁨이 없어요”라는 말은 “제가 흘려보내지 않고 있어요”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손을 펴서 흘려보내야 복이 흘러 들어옵니다. 흘려보내면 사랑이 더욱 넘쳐납니다. 흘려보내면 기쁨과 행복이 넘쳐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복을 베풀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성탄절에도 베트남에 생명의 쌀을 나눕니다. 200가정을 선정해서 각 가정 당 10kg의 쌀을 나눕니다. 태국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볼펜과 구운 소금과 마스크 팩을 나눕니다. 안양교도소에 10명의 어려운 수감자에게 2만 원씩의 영치금을 넣어줍니다. 동두천에 아직도 연탄을 떼면서 살고 있는 어려운 십여 가정에 연탄 2천장을 나눕니다. 선한 일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흩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 직장, 학교 등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충전 받는 곳이며 우리가 사역하는 곳은 세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예배와 교제와 봉사와 교육과 선교를 통해서 힘을 받은 후에 세상 속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살림하러 흩어져야 합니다. 아내의, 엄마의, 아버지의, 직장인의, 사장님의 역할을 하러 흩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생명이 전해지고,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도 쫓겨나고,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치료됩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진 곳에 큰 기쁨이 생깁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8) 그 기쁨은 흩어진 사람을 통해서 전해졌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흩어졌습니까? 핍박을 피해서 집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피난 나온 사람을 통해서 기쁨이 전해진다는 것이 아이러니 아닌가요? 6.25 전쟁 중에 피난민들의 시커멓고 어두운 얼굴들을 우리는 기록 사진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피난살이의 아픔이 시 커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서 왔지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성은 사마리아 성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1천 년의 암흑기가 있던 곳입니다. 1천 년 동안 좌절, 절망, 슬픔, 한, 죄악, 저주가 있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개, 돼지로 취급당했습니다. 이방인들과 섞이는 혼혈족이 되면서 혐오하는 의미로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는 멸시를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지나서 가면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도 그곳을 관통하지 않고 돌아 갈 정도로 그 땅과 사람들을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큰 기쁨이 있게 됩니다. 사마리아 성 같던 우리에게도 예수로 인해서 큰 기쁨이 있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때로는 문제, 고난, 어려움, 실패도 있지만 예수로 인해서 큰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찬송가 191장) 그리스도인은 흩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충전 받아서 기쁨을 가지고 세상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