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어린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교사이며 인도자입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부모처럼 평생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의 도움과 인도를 받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인도하시며 그 길을 보호하십니다. 성경에는 그런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빌립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세밀하게 받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8:26)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행8:29)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8:39) 주의 사자, 성령, 주의 영이라고 표현하는 존재가 빌립을 이끌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빌립을 이끄시고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상식과 양심과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거짓말 하거나 누군가를 힘들게 해서 양심에 찔린다면 피해를 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며 다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몸이나 마음으로 어떤 감동이 온다면 그것에 잘 반응하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하나님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넘어서고 벗어나는 인도하심은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에만 순종해도 성령께 인도함을 잘 받게 됩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때에 말씀과 기도, 평안과 기쁨, 주변에 믿는 사람들과 목회자들의 조언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그런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는 분명히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에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사람을 만납니다.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에티오피아 고위 관료를 만납니다. 빌립이 만난 그 관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필리핀 보홀섬에도 생명의 쌀을 나누게 됩니다. 이번에 우리와 동역하는 김성옥 선교사님은 작년에 보홀섬에 들어갔습니다. 시골로 들어가서 함께 동역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 도시에 나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는 마음을 자주 주셔서 교회가 없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서 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 김성옥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게 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의 말씀에 따라서 물을 떠 온 하인들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면 기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순종하면 탄탄대로만 열릴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령께서 “남쪽으로 향하여 내려가라”고 하시니 빌립은 그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인데도 광야입니다. 광야보다는 만날 사람이 많아서 할 일도 많고,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광야입니다. 우리는 가는 길이 탄탄대로이며 만사형통의 길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만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은 광야에 있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십 수 년을 광야에서, 동굴에서, 이방 땅에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던 때입니다. 고통스러운 광야에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길만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볼 때는 광야입니다. 그런데 힘겹지만 광야에 나가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더욱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풍요를 누리고 있을 때에는 알 수 없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립니다.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맺힙니다. 열매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저절로 맺히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거스리지 않으면 성령께서 행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그리스도가 인생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예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예수께 붙어있으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힙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인생의 키를 예수께서 잡으시도록 내어드리면 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께서 인도하시면 가장 평안합니다. 주인이신 예수께서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