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입니다. 성실, 정직, 배려 등 여러 가지 덕목과 함께 매우 소중한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이며 자신을 드러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오늘날에도 겸손은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겸손은 우선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누구라는 정확한 정체성을 알 때에 진정한 겸손이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겸손의 아이콘을 꼽으라면 세례 요한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외치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가 요단강에 나타났습니다. 그가 예수를 향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하자 예수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급기야 자신의 제자들이 이탈하고 따르던 추종자들이 발길을 돌려서 예수를 따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요한의 입장에서는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나는 그의 신발 끈을 메는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면서 매우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겸손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 당시에 유대는 로마에 지배를 받았으며 분봉왕으로 헤롯이 있었습니다. 헤롯은 예수의 제자 중에서 야고보를 칼로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 일에 백성들이 기뻐하면서 반응이 좋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인기를 얻기 위해서 베드로도 죽이려고 했던 잔인무도한 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헤롯왕이 은과 화려한 직물로 만들어진 왕의 옷을 차려 입고 단상에 앉아서 백성에게 연설을 했습니다. 목소리가 멋있었는지, 연설 내용이 좋았는지, 아니면 빛나고 멋진 왕의 복장 때문인지 백성들이 크게 외치면서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헤롯왕을 높이고 찬양했습니다. 헤롯은 아첨하는 백성들을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찬양하는 소리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으스대면서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예를 자신이 가로챘습니다. 그러자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쳐서 벌레에게 먹혀 죽습니다. 헤롯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인기와 칭찬에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세례 요한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겸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가졌던 겸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를 겸손하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았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헤롯왕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교만하다가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았을까요? 어떤 방법이나 경로를 통해서 자신을 알 수 있었을까요? 부모, 가족,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알았을까요? 물론 그런 경로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자신을 알 수 있었던 최상의 방법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통해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알았던 것처럼 누구나 하나님의 계시로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나 환상일까요? 전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계시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 성경으로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고 번성하라는 위임 명령을 받은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 멸망의 지옥에 던져져야 하는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한 나라,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처럼 큰 은총을 입은 자가 누구냐고 하면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 그의 소유된 백성, 하늘나라의 대사, 하나님의 청지기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 겸손은 무조건 자신을 낮추고, 심지어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분들은, 예수를 만나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