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타고 있는 배 안에 이백 칠십육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서 두 주간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겪습니다. 심한 배 멀미로 먹지 못하고, 추위와 배고픔과 제대로 잠도 못자면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나흘이 되면서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사공들이 수심을 재어보니 점점 낮아집니다. 그들은 암초에 걸리지 않으려고 닻을 내립니다. 이때에 사공들이 배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닻을 내리는 척하면서 작은 배를 내립니다. 자기들만 작은 배를 타고 육지로 가겠다는 이기적이고 악한 속셈입니다. 어찌 다른 사람들은 죽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치려고 합니까? 함께 살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내팽개치는 그렇게 비인간적인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인간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죄성입니다. 온갖 더럽고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만 살려고 합니다. 뇌물, 거짓, 권모술수, 협박, 사기, 폭행, 살인 등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건들을 듣고 보면서 치를 떨고, 화가 나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그 수치만 다를 뿐이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안에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치려는 사공들처럼 이기적이고 추악한 죄성이 있습니다.
도망치려는 사공들을 목격한 바울이 ‘저 사공들이 배에 있지 않으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군사들에게 말합니다. 군사들은 거루 줄을 끊어서 사공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합니다. 날이 새기 시작할 때에 바울은 배에 탄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당신들이 광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겪으며 먹지 못한지가 벌써 두 주가 지났는데, 이제 당신들이 힘을 내어야 살 수 있으니 음식을 드십시오. 당신들 중 누구라도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당신도 이런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면서 희망의 메신저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상처 입은 배우자에게, 위로가 필요한 친구에게, 격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자로 말입니다.
이제 날이 환해지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이고 경사가 있는 작은 항만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바다의 풍랑은 만만치 않습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배가 파손 당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항만에 배를 대야 합니다. 배가 육지로 들어가다가, 그만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에 빠져버립니다. 배 앞쪽이 그곳에 빠져서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배 뒤쪽은 거친 물살에 깨지기 시작합니다. 그냥 있다가는 배가 파선하게 되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헤엄치거나, 나무 조각이라도 붙잡고 육지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때 로마 군사들은 죄수들을 다 죽이자고 합니다. 로마법상 죄수를 놓치게 되면 병사가 대신 죄 값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부장도 죄수들을 살려두었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문책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죄수들을 죽였노라고 보고한다면 문책을 피할 수 있습니다. 군사들의 제안에 백부장이 나쁜 마음이 생겨서 허락했다면 바울은 꼼짝없이 죽게 됩니다. 백부장은 죄수들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백부장의 마음을 만지셔서 바울의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마음으로 예고도 없이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더가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왕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불 속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형들의 마음을 만지셔서 죽이지 않고 장사꾼에게 팔게 하셨습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 시키려고 했으나 그 계획을 파하시고 오히려 모르드개를 달려고 만든 이십 미터 넘는 장대에 하만과 아들들이 달리게 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나도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 할뻔 한 적도 있습니다. 앞 차가 사고가 나면서 뒤에서 달리다가 큰 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독사에 물려서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차례나 생명이 위협 받는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1초 밖에 안 되는 순간에 개입하셨나요? 누가 내 손을 붙잡으셨나요?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만을 죽이시고 대신해서 모르드개를 세우셔서 아하수에로 왕 다음 가는 총리대신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