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함께 배에 탔던 276명의 사람들이 다 안전하게 구조됩니다. 배는 파선되었지만, 바울이 예고한 것처럼 작은 섬, 멜리데에 이르게 됩니다. 비가 오고 추워서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주며 영접합니다. 그때 바울이 불을 피우다가 독사에게 물립니다. 원주민들이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의 몸이 퉁퉁 붓거나 그가 죽을 줄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울이 죽지 않자, 원주민들은 ‘신이라’고 외칩니다.
이런 기적으로 섬의 추장이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병상에 있던 추장 아버지를 바울이 안수 기도하여 낫게 합니다. 그러자 많은 병든 자들이 바울에게 와서 고침을 받습니다. 이 일로 원주민들은 바울 일행을 후하게 대접하고 떠날 때에 쓸 것을 배에 실어줍니다.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고, 병자들을 치료한 사건이 바울을 우쭐하거나, 담대하게 했을까요? 성경에 보면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바울이 '기뻤다, 자랑스럽게 여겼다, 힘이 났다'는 표현은 전혀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우쭐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팔로우’하라고 하거나, 유투브에 올려서 ‘좋아요’ 해달라고 할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도구로 기적을 행하는 것을 담담하게 여깁니다.
바울과 사람들은 석 달 정도 섬에서 겨울을 나고 다른 배를 타고 떠납니다. 몇 곳을 거쳐 드디어 이탈리아에 도착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맞으러 나옵니다. 그 때 바울이 그들을 보고서 멜리데에서 기적을 행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행28:15) 로마에서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는 약 56km입니다. 압비오 광장은 거기서 약 16km를 더 내려옵니다. 즉 형제들이 꽤 먼 거리를 바울을 맞으러 달려 온 거죠. 더군다나 바울을 맞는 성도들의 모습이 바울을 평소와는 다르게 만듭니다. ‘맞으러 왔다’는 ‘아펜텐신’이라는 헬라어 단어인데, 이 단어는 왕이나 대사가 왔을 때 아니면 장군이 승리하고 개선할 때만 사용하는 말입니다. 누가가 왜 그 단어를 썼을까요? 그만큼 로마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하나님이 주시는 존경과 사랑으로 맞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랑으로 영접하는 동역자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멜리데에서 기적을 행한 후에는 바울의 심정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로마에 와서 꿈에도 그리던 믿음의 형제들을 직접 만난 것은 바울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이, 나도 무엇보다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보면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습니다. 심지어 예배에 늦게 오는 성도를 봐도 좋습니다. 더군다나 ‘은혜 받았어요’ ‘우리 목사님 감사해요’ ‘기도 받고 나니 힘이 나요’라는 말을 들으면 더 담대한 마음을 얻습니다. 내게 큰 교회의 사례, 좋은 숙소, 멋진 볼거리, 화려한 먹거리가 감사일까요? 물론 좋겠지만, 우리 성도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밥 한 끼 사줄 때 가장 감사하고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담대한 마음을 어디에서 얻는 것인가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붙여주신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31:6) 힘 빠졌으면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담대한 마음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격려와 위로로 마음을 나누는 배우자나 가족이 가장 큰 힘입니다. 1992년 LA흑인 폭동 당시 큰 피해를 입은 한 한국인 남자가 있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남자는 수개월 동안 일도 안 하고 집에만 박혀있었습니다. 아내가 더 많이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내가 힘겹게 일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퇴근하면서 오랜만에 과일을 사왔습니다. 아이들이 먹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그랬답니다. ‘아빠 드시면 먹자’ 방에 박혀서 억울함과 분노로 죽지 못해 살고 있던 남편이 뒤통수 한 대 맞은 것처럼 번쩍했습니다. ‘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남편은 다시 일어나 힘내어 살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아빠 수고하셨어요’ ‘엄마 고마워요’ 코로나 시대에 우리 서로 응원이 필요합니다. ‘사장님 고생 많으시죠, 기도할께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공무원, 경찰관, 의료진 여러분 고맙습니다’
살아갈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힘 받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