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이 잘 됩니까? 사랑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사랑하는 것이 쉽습니까? 특히 당신을 힘들게 하고, 짜증나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잘 됩니까?
베드로는 예수께 너무 죄송스럽고, 미안하고,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를 기다리지 못하고 물고기 잡으러가는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께서는 베드로라고 하지 않고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반석이라는 의미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베드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지 못했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언제나 시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은 제자들과의 비교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솔직하고 분명한 대답을 원하셨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최우선인가를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사랑인 ‘아가파오’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머뭇거렸지만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친한 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솔직하고 진지한 고백이었습니다. ‘아가파오’와 ‘필레오’는 동일한 의미로 ‘사랑하다’이므로 굳이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랑한다는 의미는 같을 수 있지만 담겨진 의미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가파오’와 같은 완전한 사랑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아가파오’의 사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는 최선이며 솔직한 고백으로 ‘필레오’의 사랑을 고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예수께서 양 무리를 그에게 맡기시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왜 세 번이나 물으시는지 죄송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실 때에, 세 번이나 부인했기에 세 번을 물으시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세 번 물으셔서 그 세 번의 부인을 다 씻어주시려는 예수의 마음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죄송스럽고 부끄러웠지만, 고백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다시 사명을 확인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됩니다. 내가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베드로처럼 예수를 외면하고 속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해드리는 모습이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예수를 사랑하면 됩니다. 그럼 예수께서 그 사랑에 사랑을 부어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를 사랑한다면 아내, 남편, 자녀, 형제, 동료, 성도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혹시 누군가가 사랑스럽지 않다면, 예수를 향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혹시 사명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예수를 향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특히나 우리를 힘들게 하고, 짜증나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미운 사람을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예수를 사랑하게 된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결국 네로 황제시대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잘 모르고 자기 욕심대로 살 때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알게 되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면서,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서 자기 욕심대로만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희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못나서, 바보라서,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하면 됩니다. 그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사랑합니다.